묵상자료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 요 12:20-26.

박성완 2021. 3. 30. 00:00

묵상자료 7257(2021. 3. 30. 화요일).

시편 시 142:4-5.

찬송 53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초하여 병이든 사람을 치료하는 약은 이 세상에 없다. 선량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때로는 세상에 대해 화를 내거나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할 바를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세상에 대해 불만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로버트 사우디가 남긴 말입니다. 로버트 사우디는 1774년에 태어나 69년을 살다간 영국의 시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교지를 참관할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는데요. 이 때, 지나친 매질을 비판하는 글을 싫었다가 퇴학을 당한 후에 반항적인 인물이 됩니다. 사우디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에 열렬한 지지자가 돼, <잔 다르크> 라는 시를 발표하고, 뜻을 같이하던 코올리지와 함께 이상적인 농업 공동체를 세우자는 계획을 세우지만, 실현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숙부를 따라 포르투갈로 건너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문학을 공부하게 되는데요. 이 때 다시 혁명적인 인물에서 보수주의자로 탈바꿈 합니다. 사우디가 남긴 말 중에는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이 가끔 세상에 분노할 수 있고 애달파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의무를 다한 사람은 세상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속에서 혁명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보수주의자였던 사우디의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볼 수 있는데요. 시인으로 시작했지만 비평 전기 번역 등 쉴 새 없이 작품 활동을 하던 사우디. 말년에는 아내가 정신이상을 겪고 또 아내가 죽은 뒤에 재혼하면서 생긴 집안싸움과 쇠약해져 가는 신심으로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그려서일까요? 로버트 사우디는 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네 가지는 당신의 보물이 아닙니다. 주여, 나는 이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나의 공헌, 나의 소원들, 나의 죄, 그리고 나의 반성들을.”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328일 방송>

 

2. “예수를 찾아온 이방인들(20-26)”을 읽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방인(異邦人)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에 대해서 사용하는 말로,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이외에는 모두 다 낯선 사람이라고 부른데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들이 유대 사회에 뒤섞여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령 행전 2:5-13을 보면 상당수의 이방인들이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체험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이미 헬라 성()을 가진 빌립이라는 제자도 있었으며,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도 헬라 혈통을 가진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가 앗수르와 이집트 그리고 바벨론과 같은 주위 나라들에 의해서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고 박해가 심하자 나라를 떠나게 된 이른바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가 생겨난 것입니다. 비록 부계든 모계든 유대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순혈주의(純血主義)를 고집하는 유대 정통주의 자들 입장에서는 이들 모두를 이방인의 범주에 넣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디아스포라 이방인들은 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보다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예수 운동을 주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를 만나고 싶어서 헬라 성을 가진 빌립을 중재자로 면담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이른 바 한 알의 밀알이라는 말씀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한 알의 밀알 일야기는 전혀 낯선 내용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땅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은 자기 몸을 송두리째 희생할 때 비로소 싹을 내고 엄청난 열매를 거둔다는 진리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희생이 없이는 풍성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농사 이야기로 끝난 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십자가의 길을 내다보게 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번 더 주목할 말씀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이 대조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점입니다. 자기 목숨을 아낀다는 말은 보통 시절에는 긍정적인 말인데 반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잘못된 태도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말은 보통 시절에는 부정적인 말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로운 태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알의 밀알을 대입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희생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가치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과 내일을 염두에 둔 삶에서, 오늘 희생하는 삶이 없이는 내일에 희망이 없다고 말입니다.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오늘 먼저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