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중보기도의 모범. / 요 17:1-11.

박성완 2021. 4. 12. 00:00

묵상자료 7270(2021. 4. 12. 월요일).

시편 시 145:4-7.

찬송 49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과 싸운 일이야 말로 가장 힘든 싸움이며, 자기 자신에게 이기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승리이다.” 프리드리히 폰 루가흐가 남긴 말입니다. 루가흐는 1604년부터 1655년까지 51년을 살다간 독일의 풍자시인입니다. 귀족이었지만 부모를 일찍 여위고 고아로 자랐는데요. 이로 인해서 어쩔 수없이 낮아진 신분으로 루가흐는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풍자어로 승화시켰는데요. 루가흐는 당시 모국어인 독일어를 외면하며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 문화에 심취하는 귀족들의 위선을 직설적이고 꾸밈없는 문체로 풍자했습니다. 또 간결한 풍자시로 귀족 정신과 독일 애국자들을 지지했으며, 종교 집단 간의 투쟁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신랄하고 또 재치 있게 표현해 냅니다. 바로 이런 구절들 때문인데요. “술이 빚은 우정은 술처럼 하룻밤 밖에 가지 못한다. 참다운 친구이며 진실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의 친구임을 과시하는 사람이다. 즐거운 생활과 절도 있는 생활, 또 평온한 생활은 의사를 멀리한다. 9개월이 걸려 인간은 살아갈 준비를 하지만,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데는 일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는 이렇게 풍자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찾는 것이 많아지는 법, 그러나 오로지 더욱 더 사랑하고 입을 좀처럼 열지를 마라. 사랑의 왕국에서는 침묵이 다스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감동을 잃게 되고 고통이 스며드는 법이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47일 방송>

 

2.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다(1-11)”을 읽었습니다. 요한복음서 17장은 1-26절까지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을 셋으로 나눠서 오늘은 그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주기도를 제외하고 주님의 기도가 한 두 구절씩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소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우선 이 기도문은 대표적인 중보기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길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서툴고 진정성까지 의심받을 정도인데, 일시적이거나 일회성으로 끝나는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진정성의 무게는 성실성으로 입증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기도부탁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거절하기도 딱해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이를 위해서 무슨 중보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주님의 기도에서 그 정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빌으신 첫 번 째 기도는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드려야 할 모든 기도의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둘째는 제자들의 안위와 소명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가면서 남겨두는 제자들이 너무 외로워 보였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소중하게 돌보실 것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이렇게 기도한 것은, 하나님만이 우리들 인생을 친히 돌보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해 두시려는 깊은 뜻이 있다 하겠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확인하듯, 주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듯 말입니다. 세 번째 기도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 세 번째 기도는 내일 묵상할 주제이기도 합니다만, 하나가 된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말인데, 이 점만 언급하고 내일로 미루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제복을 입은 사람처럼 똑 같아지는 것을 말하지만, 실제로 겉보기와는 다르게 똑 같은 것이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쌍둥이가 서로 성격이 하늘과 땅처럼 다르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 됨이란 단일화(unify)가 아니라 통전성(integrity)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중심을 꿰뚫는 일체감, 낯설지 않은 어울림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