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적 유대인보다 월등한 복음적 이방인의 신앙. / 골 1:24-2:5.
묵상자료 7286호(2021. 4. 28. 수요일).
시편 시 148:1-3.
찬송 20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하고 내 조국의 풍요로운 산과 강, 흙을 사랑하고, 대지 위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기에 한 평생 평범한 중국인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렸다. 내가 끊임없이 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평화였다.” 이 말은 중국화의 거목인 츠바이스의 자서전 [쇠똥 화로에서 향내가 난다] 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가 94살 때 그린 그림 <연꽃과 개구리>를 우연히 보고 나서 한 동안 그 그림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갔는데요. 개구리가 고요한 풍덩 빠져들듯이 말이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그림을 보면서 편안했습니다. 츠바이스는 1864년에 태어나 1957년까지 살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중국의 근대화 그 자체였습니다. 청나라 말기에서 일제 강점기, 그리고 중국 혁명의 격동 속에서, 가난한 아이로 태어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목수 일을 하면서도, 그가 항상 생각한 것은 글 공부였습니다. 목수인 그에게 연장 대신에 붓을 쥐어준 사람은, 그의 스승인 휘치위안이었는데요. 츠바이스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알아 본 스승은, 젊음 츠바이스가 그림을 그려 판다면 글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를 해 준 겁니다. 스승의 칭찬에 힘을 얻어서 츠바이스는 수 만점의 그림을 그렸고, 결국 중국 근현대 미술계의 최고봉에 올랐습니다. 스승이 타계하자, 츠바이스는 생전에 스승이 잘 그렸다고 칭찬한 작품 20여점을 분향하듯이 불살랐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분신을 태워서 스승의 죽음을 애도한 것입니다. 츠바이스의 책에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할아버지가 있고, 할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츠바이스는 가난했지만 그 가난에 불을 지피면서 향내가 나는 추억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글을 쓰려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어디 솥에 글을 끓여 먹는 다더냐?” 라면서 걱정을 했지만, 손자가 그림으로 돈을 벌자, “이제 보니 그림을 솥에 넣고 끓이는구나.”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자서전을 통해서 담담하게 가난한 시골 목수가 화단의 거목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쓰고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자서전이라기보다는, 한 평범한 중국 시골의 할아버지의 일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평화로운 삶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4월 27일 방송>
2. “교회의 일꾼 바울(24-2:5)”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옆집에 현역인 목사님 식구가 이사를 오셨는데, 텃밭에서 혹은 잔디밭에서 일을 할 때 만나곤 합니다. 하루 종일 집 안에 박혀 있는 제 모습이 안타까우신지 딱한 표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는 코로나19로 20% 교인만 출석하게 하여 저와 같은 기저질환자는 영상예배로 만족합니다. 다만 매달 한 주일은 장애인교회가 저를 초청해서 설교를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조금은 다릅니다. 적어도 하루 5시간 이상은 책을 읽고 묵상을 하고, 묵상자료를 준비해서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 묵상자료를 배달해 주는 묵상식구들의 활동을 감안하면, 하루에 천 명쯤은 묵상자료가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은퇴가 없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의 일꾼인 사도 바울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교회의 일꾼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는 교회의 일꾼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고통을 겪는 일을 한다 고백합니다. 그 고통이란 복음을 위해서 육체적인 시련을 당하는 일일 수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답게 전하는 일은 참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도는 그동안 변방에 밀려나 있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광을 차지하게 된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사도는 고통스러운 일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제대로 알아듣게 된 때문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 일꾼들은 제 힘으로 구원받으려는 교회 안의 보수 세력들(유대인들)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힘쓰는 일이라 했습니다. 가령 사도 바울은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서 기독교 진리를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알리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가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떠난 적 없이 살았지만, 거창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두 분 스승을 만났습니다. 전영창 교장선생님과 원경선이사장님이셨습니다. 그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믿고 가르치는 분들이셨습니다. 한 분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가슴을 품고 세상을 보게 하셨고, 다른 한 분은 땅을 살리는 참 농사꾼의 삶에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