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살아가는 길. / 롬 13:1-14.
묵상자료 7293호(2021. 5. 5. 수요일).
시편 시 150:1-3.
찬송 34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 <인형사> 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영화 <인형사>는 인형에도 영혼이 있다, 라는 가정에서 만들어졌는데요. 사람이 어떤 물건에 지극 정성을 다하면, 물건에 그 사람의 영혼이 옮겨 간다는 말이 있지요. 그 영화는 인간 모습을 한 인형이 아주 무서운 복수를 하는 공포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 동안, 그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의 인형이 무섭기도 했는데요. 지구상에서 사람과 가장 비슷한 물건이 인형이지요. 그런데 이 인형은 언제부터 인간과 같이 했을까요? 인형은 어느 시대나 인간과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돌도끼를 들고 다니던 선사시대에도 인형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오늘날 인형의 원형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보기에 인형다운 인형의 기원은 역시 문명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의 중 왕국 시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에 목각인형이 있었고요. 또 천으로 만든 현대적인 인형도 이집트인들이 600년에서 700년경에 만들었다고 하네요. 요즘에는 또 관절 인형이 인기라고 하지요. 정말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인형이 매우 고가에 거래되고 또 동호인들도 꽤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절 인형은 너무 사람 같아서, 가끔씩 보면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관절 인형처럼 눈동자가 움직이는 인형은 1880년경에 등장합니다. 앞서 사람과 비슷한 사이지의 인형인 마네킹은 18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의 패션 산업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외교 사절 역할까지 했다고 하네요. 자 그리고 21세기에는 움직이는 인형, 로봇의 시대가 된다고 하지요. 스필버그의 영화 에이아이에 나오는 로봇,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또 지능을 가지고 있는 로봇의 시대가 올 거라고 하는데,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과학적으로 따뜻한 체온까지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연 지금 내 옆에 있는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처럼 느껴질지는 잘 모르겠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5월 4일 방송>
2. “권위에 대한 복종(1-7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8-10절)”과 “단정한 처신(11-14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와 셋째 단락입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와 셋째 단락입니다. 종종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큰 잘못 중 하나는 성경을 전체적인 맥락에서가 아니라 문자적이며 한 두 구절에 집중하다가 벌이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는 구절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롬 10:4)와 같은 구절을 토대로 구약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구약 폐기론을 주장한 마르키온(A.D.144년 파문)이 그런 인물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조화시킬 수 없을 때 저지르는 큰 실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큰 뿌리 중 하나인 율법을 사랑으로 정리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사랑이라고 말입니다(마 22:37-40).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율법을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완벽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완벽하게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서 부단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마음으로 이웃을 미워하고 탐욕으로 가득 찬 때문입니다.
사도는 이런 문제를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경고하면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십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신학에서는 <不可能한 可能性>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을 어떻게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60년대 양 아무개 목사님은 남자의 양기를 잘라버리면 간음죄를 짓지 않을까 실행했는데도 음욕은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율법에 대한 인간의 한계입니다. 율법의 요구에 인간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이런 불쌍한 인간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셨고, 십자가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라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우리 갈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3. 어린이를 한 인격체로 주 안에서 건강하게 키워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