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의 사제직은 예수님의 그림자. / 히 7:18-28.
묵상자료 7308호(2021. 5. 20. 목요일).
시편 시 5:1-3.
찬송 39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의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 환자만을 골라서 진료를 해도 잘 살 수가 있었는데요. 진료비가 없는 환자들만을 찾아다니면서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그를 안타까워하던 한 양반이 이유를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불쌍하고 딱한 사람은 저 시장의 군박(窘迫)한 백성들입니다. 제가 침을 잡고 사람들 속을 돌아다닌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살려낸 사람은 아무리 못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겁니다. 제 나이 마흔이니 다시 10년을 지나면 아마도 만 명을 살려 낼 수 있을 것이고, 만 명을 살려내면 저의 일도 끝이 날 겁니다.” 만 명을 살려내기 위한 삶. 그래서 편안한 진료실 대신에 침을 잡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아픈 배를 부모의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명의(名醫), 이 사람이 조광일입니다. 강명관 교수가 자신의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쓴 글인데요. 오늘은 가난한 사람을 제 자식처럼 사랑했던 조선시대 숨겨진 명의 조광일에게서 참 어른의 의미를 짚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는 동의보감의 허준처럼 유명한 인물이 아닙니다. 화려한 꽃 보다는 보이지 않는 향기의 삶을 살았고, 또 그 향기를 맡은 이 책의 저자 강명관 교수가 조광일이야 말로 명의 중의 명의라고 했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을 살지는 못하겠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는 오늘, 하고 싶은 작은 얘기였습니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지요. 한 사람이 성인이 된다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참 많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현자들은 어른 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사랑 말입니다. 그 사랑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지요.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면 될까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5월 21일 방송>
2. “멜기세덱의 사제직2(18-28절)”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않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가진 신앙의 약점을 통해서 예수님을 이해시키려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멜기세덱의 사제직을 소환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단 두 차례(창 14:18, 시 110:4) 등장하는 멜기세덱의 기사가, 히브리서에만 무려 8차례(히 5:6, 10, 6:20, 7:1, 10, 11, 15, 17) 등장하고 있는 점은 유대인들이 멜기세덱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의 출생의 비밀처럼, 그의 사제직 또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 개입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면 얼마든지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설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을 통해서 알려진 사제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며 인간의 잘못을 제물을 바침으로 화해하는 통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사제였던 멜기세덱과 레위의 제사장들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습니다. 레위의 제사장들이 인간이라고 한다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보내신 신비한 사제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율법 이전의 사제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인간의 자기 공로나, 인간의 협력 없이도 가능한 활동이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역할에 큰 기대나 비중을 두려는 시도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신인 협력설(Synergism)이나 자유의지론(Free Will)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까닭은 완전하게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만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멜기세덱의 사제직은 예수님의 사제직의 그림자라는 점에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고 있다 하겠습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