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 히 9:1-14.

박성완 2021. 5. 22. 00:00

묵상자료 7310(2021. 5. 22. 토요일).

시편 시 5:7-9.

찬송 2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생명집단은 현화식물, 그러니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종자식물이라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동물이 가장 무서울 것 같잖아요. 그런데 무게로는 현화 식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나뭇잎 한 장같이 그 가벼운 것들이 서로 모이니까 아주 무거운 것이 되는 거지요. 숫자로는 곤충이 지구에서는 제일 많다고 합니다. 이 두 생물 집단의 특징은, 서로에게 도움을 존재들이라는 건데요. 나비가 꽃가루를 날라 주는 식으로 바로 공생이지요. 서로 어울려 살다보니까, 지구에서 아주 강력한 존재가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주 현명한 생명집단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 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이러한 개념을 <호모 신비우스> 라는 신조어로 설명하는데요. 호모 신비우스라는 서로 어울려 산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이 경쟁의 시대에 공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더불어 산다는 그것이 현명한 삶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불가(佛家)에서는 밥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고 하는데요. 밥은 서로 나누어 먹는다는 거지요. 이 공양의 의미가 공생과 참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것은 자기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 경쟁심과 더불어서 공생, 공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삶의 고통이나 번민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미국의 원주민들은 인간끼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의 돌멩이 하나와도 공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삶은 언어로도 표현되어 있는데요. 어떤 인디언의 부족의 아침 인사에 미타쿠에 오야신, 미타쿠에 오야신 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친척이다 는 뜻이라고 해요. 여기에서 우리는 대 자연을 포함한 의미이고요.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절의 인도는 중국의 춘추전구시대처럼 전쟁이 많았던 때였고,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석가모니는 인간 정신의 최고의 경지라는 열반에 이르렀지만, 속세에 사는 우리가 그런 경지에 이르기는 몹시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자비심 서로 가엾게 여겨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 사랑의 첫 단추가 아마도 공생, 또 공양이 아닐까? 싶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524일 방송>

 

2. “땅의 성전과 하늘의 성전(1-14)”을 읽었습니다. 유대인의 성전 역사는 출애굽에서 출발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인 예배를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소를 마련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의 40년은 광야를 떠도는 생활이었기에 백성들은 천막에 거주하였고, 자연히 하나님의 성전도 천막성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 천막성전에는 촛대와 빵을 진열한 상이 있었는데, 이를 성소라고 불렀고, 그 뒤에 휘장을 두른 곳을 지성소라 불렀는데, 분향단과 계약의 궤가 있었습니다. 그 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 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궤를 케루빔 천사들이 날개로 덮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케루빔 천사는 지성소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최고위급 천사인 세라핌은 하나님의 옥좌를 돌며 찬양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소 혹은 예배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실 유일한 분이시기에 광야 교회나 마을 교회 그리고 도시 교회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기도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유대인의 성전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써 성소와 희생제물을 가지고 들어가 바치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런 희생제물이 드려지는 지성소는 1년에 딱 한 차례 사용하는데, 그해의 대사제가 백성은 물론 자신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바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배자들의 양심까지 완전하게 씻어냈다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까닭은 그런 규칙과 의식은 인간적인 것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잡아주실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대사제가 되신 것입니다.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염소나 송아지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써 온 인류의 죄를 씻는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인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게 되었고, 죽음으로 향하던 모든 행실을 버리게 하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피를 무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