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무름의 수혜자 룻. / 룻 3:1-18.
묵상자료 7322호(2021. 6. 3. 목요일).
시편 시 8:3-5.
찬송 41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답게 핀 꽃을 놓고 생화인지 조화인지를 확인하는 일도 좀 씁쓸하지요. 하지만 새소리까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건 훨씬 더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프랑스의 학이 생각나네요. 프랑스에서는 연못이나 호수에다 학이랑 똑 같이 생긴 가짜 학을 만들어 세워 둡니다. 진짜 학들이 연못이나 호수 속의 물고기를 자꾸 잡아먹어 서지요. 그런데 학들은 특이하게 다른 학이 있는 곳에는 거의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짜 학을 막기 위해서, 가짜 학을 만들어 둔 거지요. 하지만 진짜 학들도 몇 번 겪어보고 나서는, 가짜 학에게 잘 속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못속의 물고기들은 가짜 학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진짜 학으로부터 계속 수난을 당한다고 하네요. 꽃이며 새의 고고한 느낌의 학까지, 진짜와 가짜의 거리가 갈수록 더 좁아지고, 그러니 양쪽을 구별하는 일은 갈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그럴수록 진짜를 찾는 마음 또한 더욱 크고 간절해지겠지요. 그런 간절함은 꽃이나 새 보다 사람에 대해서, 만남의 대상이나 상대방에 대해서, 더욱 크고 중요하지 않을까? 품성이나 성격이 진짜 좋은 사람과,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좋은 듯 꾸미는 사람간의 거리는, 구별하기 쉽도록 아예 아주 멀고 분명했으면 싶기도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5일 방송>b.
2. “밤을 타서 보아즈와 가까워지다(1-18절)”을 읽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다른 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전통들이 있습니다. 이런 전통들은 민족을 공동체로 아우르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곤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업 무름이라는 전통입니다. 원래 기업이란 상속된 어떤 것 소유지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땅을 주셨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상속을 할 때, 두 아내를 둔 경우 조금 덜 사랑하는 여인이 낳은 아들이 장자일 경우에도 그에게 두 몫을 받을 권리를 누리게 했고(신 21:15-17), 아들이 없는 경우 딸에게 그 기업을 주게 하였습니다(민 27:8). 이렇듯 기업은 토지만이 아니라, 자녀가 없는 과부는 같은 지파에서 가장 가까운 친족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배경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룻은 시모 나오미의 조언을 받아, 보아즈의 타작마당에서 야영을 하는 보아즈의 천막을 알아두고,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려 보아즈의 담요 아래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보아즈는 룻의 이런 행동의 의미를 알고서, 기업 무름의 절차를 따르는 게 옳다고 하루의 말미를 제시합니다. 법과 절차를 따르는 것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인격사회에서나 가능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다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시간 낭비이고 바보짓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내용보다는 형식에 침몰된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죄인을 앞에 두고서도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그 불의한 죄악을 들추어낼 수 없도록 공소시효 만료로 끝이 나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부터 3,200여 년 전에도 벌어졌던 사건으로, 절차를 지키면서 기업 무름이라는 전통을 잘 지킨 한 인격자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 진진한 역사 교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아즈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신사(紳士) 중의 신사였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의 증조모를 이렇게 보호해 주셨고, 기업 무름의 수혜자로 룻을 역사의 무대 위해서 당당하게 서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색할 수도 있고, 물건 취급을 하듯 삭막할 수도 있는 사람 간의 기업 무름이, 오히려 소설 같기도 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저만의 시각일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