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정의에 대한 절대 기준이 요구되는 시대. / 신 16:18-20, 17:14-20.

박성완 2021. 6. 17. 00:00

묵상자료 7336(2021. 6. 17. 목요일).

시편 시 10:15-16.

찬송 1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사소한 기능 하나 더 아는 걸로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그 기능들을 모조리 다 터득하고 활용하는 이들의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요? 낮에 만난 이는 결심했다고 합니다. 컴퓨터에 관한 책을 옆에 갖다 놓고, 커다란 주간 스케쥴표 매일매일의 날짜마다 네모 칸을 하나씩 그려놓았지요. 그리고 하루에 딱 한가지씩만 새로운 기능을 배우기로 했다고요. 한 달 동안 그러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전문가 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하는 일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어쩌면 매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감격을 맛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술이나 기능은 하루에 한 개를 배우는 동안, 언제나 그 몇 배가 더 빠르게 늘거나 변화하지요. 어차피 완벽하게 따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와 있고, 쓸 수 있는 필요한 기능을 찾고 익혀서,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도, 기술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참 소중한 결심이자 실천이 아닐까? 컴퓨터에 문서를 옮겨 붙이, 두 개의 창을 여는 일이, 마치 더 크고 쾌적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넓고 시원한 유리창을 하나 더 여는 일처럼도 느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618일 방송>b.

 

2. “재판관은 공정해야 한다(16:18-20)”이스라엘의 왕도(17:14-20)”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한 때 무전 유죄 유전 무죄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법과 정의라는 말도 다 헛소리라는 말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엊그제인데, 비슷한 문제를 다루게 된 하급심인 1심에서 뒤집는 판결을 내리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법관 탄핵이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동일한 법과 원칙 하에서 이런 판결을 두고 과연 재판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뒤늦게 나온 판결문을 보면, 그 문제를 국제 재판소에 제소했을 경우 어려울 것을 염려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쉽게 뒤집어질 굽은 판결이 될 전망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무사하게 하는 것, 법률을 왜곡시키지 않는 것, 전관예우 등 체면을 앞세우지 말 것,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할 것, 이런 부정적인 것들과 함께, 마땅히 정의만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09년에 출판, 한국에서 무려 14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센델의 하버드 대학 강의를 토대로 쓴 정치 철학서인데, 이 책에서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란 공리주의나,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요점으로 하는 자유주의가 정의라고 할 수 없다 말합니다. 공리주의는 소수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안락사 낙태 장기 거래의 자유 등으로 시장 만능주의를 만들 수 있는 점에서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목적을 따르는 삶 곧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 주의 정의라고 정의하지만, 여전히 약점이 노출됩니다. 공동체 마다 목적과 가치가 다를 때, 가치란 이미 만들어진 것일까 만들어 가는가, 자율적 선택과는 어떻게 다른가 등에서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찾아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런 기준을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절대 기준을 준비해 둬야 할 것입니다.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삼강오륜을, 크리스천이라면 십계명을 최후의 가치와 목적으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