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1. 6. 20. 성령강림절후 넷째주일] 의인 욥의 한계. / 욥 38:1-11.

박성완 2021. 6. 20. 00:00

묵상자료 7339.

시편 시 11:5-7.

찬송 36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지향했던 작가 헨리 이어링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라는 저서에서, 살면서 꼭 가져야 할 세 가지 습관을 얘기하고 있는데요. 그 첫 번째는 일하는 습관, 두 번째는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습관을 공부하는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적당한 노동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내면을 살찌우기 위한 노력도 빼놓지 않는다면, 정말 몸과 마음이 진정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겠지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64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로 구약 욥 38:1-11을 본문으로 의인 욥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우선 욥을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3:10)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욥의 한계는 더욱 더 분명해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욥기의 주제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지혜에 이르라는 말씀입니다(1-3).

동방의 의인으로 칭송받던 욥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견딜 수 없는 온갖 질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 세 사람은 욥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풀어보려고 나섭니다. 필립 얀시는 고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냈습니다. 고통 시리즈가 가리키는 것은 고통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전개되는 시련들은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대표격인 욥과 그의 친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심각한 실수는, 인간 쪽에서 뭔가 도덕적인 가치와 결과물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고통은 부도덕에서도 올 수 있지만, 더 큰 진리를 바라보게 하는 나침반입니다.

 

고난은 잠자고 있던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좋은 이웃입니다(4-8).

요즘 유익한 TV강좌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금수저들의 얘기가 아니라 흑수저들의 얘기라는 점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몇 년간 설교자로 봉사했던 시각 장애인 교회 목사님은 4살 되던 나이에 사고로 시력을 잃고, 교회 목사님을 통해 맹학교를 소개받고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구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맹인사회를 위해서 많은 공적을 쌓았습니다. 남매를 두었는데, 아드님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공무원으로, 따님은 미국 UCLA에서 변호사가 되어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에게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이란 시련이 없었다면, 지금도 경북 의령의 첩첩 산중 오지마을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시련이 그의 영혼을 깨운 것입니다.

 

고난의 멍에를 짊어진 대표주자 욥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주목했어야 합니다(9-11).

문제를 앞에 두고 푸는 방식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매우 흔한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지혜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차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도 포함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은 121:1-2입니다. 저의 첫 설교본문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의 시로, 절망 한 복판에서 울부짖었던 시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폐허로 잿더미 위에서 그가 바라본 것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믿고 있을 때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 후에 바라본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대한 힘, 진정한 사랑과 기쁨과 희망의 힘이 솟구쳐 올랐던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능력과 도덕성 때문에 자신에게 진정한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련 이전과 이후의 차이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