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오래 바라보면 허물이 보일 뿐이니. / 삼상 1:1-20.
묵상자료 7347호(2021. 6. 28. 월요일).
시편 시 16:1-4.
찬송 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야외에 나가서 미팅을 하는 것은 그 곳이 처음이었어요. 다섯 명씩 짝을 이루어서 가진 만남이었는데, 날씨도 좋았고 주변 경치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짝이 된 남학생이 아주 마음에 들었지요. 그 때까지 미팅이라는 걸 몇 번 해 보았지만, 처음 느끼는 호감이었습니다. 그러니 둘이서 호수에서 보트를 탈 때는 마음이 한껏 설렜습니다. 맑은 하늘과 푸른 나무들이 둘러싼 이곳 산정호수가 첫 데이트의 첫 시작점이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럴수록 상대방은 자신에게 어떤 느낌일지 다시 만날 생각이 있을지 없을지 불안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도 자신에게 호감을 느낀 게 분명한 듯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산정호수를 떠나오던 차 안에서 다음에 만날 시간을 물어봤고, 다음에는 시내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첫 데이트가 시작됐지요. 세상이 온통 다 자신에게 엄지손가락만 치켜 세워주던 것 같은 날들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간 둘이서 그곳을 두 번이나 더 찾아갔습니다. 여전히 보트를 타면서 처음 만난 순간의 느낌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아무리 되풀이해도 싫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또 했습니다. 그랬던 호수를 그 푸르고 잔잔하던 호수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요즘, 문득 그 호수의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가뭄 때문에 바닥이 등껍질처럼 들어난 사진이었습니다. 보트를 타던 때 얼마나 깊게 느껴졌던 호수였는데, 그 호수의 바닥을 보게 되다니,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쓰라리고 아팠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가뭄이 교외의 한 호수만이 아니라, 자신의 추억의 메마른 바닥까지 삭막하게 뒤집어 보여주는 듯해서였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28일 방송>a.
2. “사무엘이 태어나다(1-8절)”과 “한나의 기도(9-20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태어나기 직전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조상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가족사가 등장합니다. 제가 베델성서 연구원의 강사로 활동할 때 가끔 난처한 질문을 받곤 했는데, 뻔히 알면서도 툭툭 던지는 질문들을 하는 목사님들이 계셨습니다. “목사님, 성경에는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얘기들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의 부친 엘가나 역시 첫 부인 한나와 둘째 부인 브닌나가 나오는데, 목사님은 일부다처를 따른 성경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와 같은 질문입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괜찮은 결혼 제도 아닙니까?”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신학교에서 다 배운 내용인데,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색을 하며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세우셨고, 지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살게 된 지역은 아랍세계였고, 그 세계는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사회였습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하루아침에 뒤집듯 바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대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개선해 나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잘못된 전통과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들을 고쳐나가는 과정은 지난(至難)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그런 흙탕물 속에서 자라는 연꽃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에브라임 지파의 신실한 사람으로 매년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실로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실로의 제사장은 엘리였고, 그에게는 망나니 같은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습니다. 훗날 이 두 엘리의 아들들은 악행을 일삼았고 하나님은 그 둘이 한날 한 시에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둘이 죽는 것은 물론 그 소식을 들은 부모 엘리 제사장 내외까지 죽는 비운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실로의 성소에 제사를 지내는 날, 엘가나는 모든 가족들에게 제사에 쓰일 제물을 둘째 부인 브닌나와 자녀들에게 몫몫이 나누어 주었는데, 사랑하는 아내 한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몫 한 몫밖에 줄 수가 없었는데,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 때문이었다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많은 제물을 드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마음 아프게 여긴 한나는 울보가 될 수 밖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저 유명한 말 “왜 먹지도 않고 슬퍼하오. 내가 열 아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데 말이오.”라고 말함으로, 훗날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아내”라는 말의 기원을 만든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존경받는 이름 한나 역시 질투의 화신이었음을 오늘 본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신실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하나같이 인성은 추하고 부끄러운 면을 감출 수 없다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의인된 것이 그의 행실에서가 아니라 그의 믿음 때문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들 역시 보잘 것 없는 죄인들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