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전도(前途) 유망한 청소년들. / 삼상 2:12-26.
묵상자료 7349호(2021. 6. 30. 수요일).
시편 시 16:8-11.
찬송 30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미가 급해선지 내게는 연주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연주회장에 나가 공연을 기다리는 버릇이 있다. 객석을 채운 사람들이 아직 드문 이른 시각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천장을 바라보거나 프로그램 안내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일찍부터 앉아 있어봤자, 나중에 온 관객이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일어서서 틈을 내 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왜 굳이 미리 가는 걸까?” 재일 동포 칼럼니스트 서경식씨는 <나의 서양 음악 순례> 서문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일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면 불편한데, 유럽의 관객들은 연주 시작 직전에야 와서 태연이 먼저 온 사람을 일어나게 만들지요. 그런데도 왜들 일찍 가서 앉아 있는 걸까? 이어지는 이런 답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연주 시작 전에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다. 극장 조명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팀파니나 하프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이윽고 거기에서 바이올린이나 호른을 안고 정장한 남녀들이 줄지어 나타나, 떠들썩하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준비를 마친 콘서트마스터가 등장하면, 모두 일어서서 그를 맞이한다. 오보애가 천천히 기준 음은 a음을 연주하면, 모두가 거기에 맞춰 조율을 한다. 이 때 그날 밤 연주가 어떠할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예측 속에서 마침내 조율을 마치고 지휘자가 등장해 인사를 하고, 지휘봉을 치켜드는 순간. 그 순간에 이르는 상투적인 드라마의 자초지종을 맛보고 싶어서, 그는 언제나 무려 30분 전부터 객석에 앉아 공연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해서 싫거나, 시간에 맞추느라고 허겁지겁 쫓기는 듯한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설레고 즐거워서 일부러 누리는 시간인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무엇인가가 끝나는 시간이 더 즐겁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엇인가가 이제 막 시작되는 그 시간이 더 즐거운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2일 방송>a.
2. “엘리의 아들들이 죄를 짓다(12-26절)”을 읽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아론의 넷째 아들로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정통파 레위인 이었습니다. 제사장 지위와 함께 사사의 직까지 겸하는 사람이었는데, 흠이 있다면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의 부친 아론을 닮은 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천하의 망나니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서 제사장에게 돌아오는 몫을 먼저 챙기는 결례를 범할 뿐 아니라, 번제로 드릴 제물까지 가로 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까지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만남의 장막 문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의 침소까지 찾아들어가는 악행을 저질러, 제사장 엘리의 귀에까지 들렸지만, 엘리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꾸짖는다고는 하지만, 자식들이 제대로 뉘우치도록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다 바친 한나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사무엘을 대신해서 3남 2녀를 더 둘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의 극단적 선택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한없이 희망적인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니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첫째는 사랑을 풍성하게 받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을 갖게 하는 일입니다. 어느 부몬들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사랑의 표현이 약해서 충동적인 유혹이나 절망에 쉽게 주저앉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걸 알고 느끼게 해 주었다면 분명 다를텐데 말입니다. 둘째는 좌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멋진 인생을 꿈꾸게 해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아름답고 멋진 꿈을 꾸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켜내지 못하고 좌절하곤 합니다. 모두가 멋진 인생의 꿈을 꾸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지만, 쉽게 낙심하고 절망한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자신을 강하게 담금 질하도록 의지하고 붙잡아 주는 격려와 위로의 가르침이 축적되어야 하겠습니다. 가령 갈 6:9 같은 말씀을 새겨두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원망과 불평보다는 감사와 긍정의 말을 할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삶은 만족 보다는 불만족이, 형통하기 보다는 답답함이 가득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들이 쌓여 가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말이나 문제들은 우리의 삶을 어둡게 만들고 절망속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긍정과 부정이 반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과일 광주리에는 크고 실한 것과 작고 흠이 있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꺼내 먹는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크고 먹음직한 것을 고른다면, 항상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밝은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면, 훨씬 더 위기의 시대를 잘 헤쳐가지 않을까요?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김휘성군을 슬픈 마음으로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