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실하지 못하는 선민이나 법궤의 운명. / 삼상 4:1-11.
묵상자료 7352호(2021. 7. 3. 토요일).
시편 시 17:7-9.
찬송 44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거나 누군가가 가져가 버리는 건, 사실 호주머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성의 옷에 호주머니 보급 운동을 펼치자는 가디너의 글에는, 그래서 웃음이 나오지요. 하지만 가디너는 별로 할 일이 없을 땐 가끔씩 이 양복 저 양복 의 호주머니를 뒤졌다고 합니다. 다 합하면 약 50개쯤 된다지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호주머니들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단순한 물건들이 아닙니다. 가디너는 그 안에 든 물건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호주머니 마다 갖가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지키지 않았던 약속의 유령들. 이행하지 않았던 의무. 소홀히 했던 친구들.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했던 파이프. 기적적으로 피우지 않은 담배 반 값. 그리고 무질서하게 꾸려온 생활 때문에 약이 된 갓가지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러니 호주머니를 뒤진다는 건, 한편으론 자신을 반성하거나 뜻밖의 수확물을 얻게 되는 일입니다. 가방 대신 호주머니를 사용하자는 권유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새로 꺼내 입은 여름옷들의 어느 주머니에서, 문득 스스로를 반성케 하는 큰 수확의 느낌을 주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길 기대하게 되는 건, 나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3일 방송>b.
2. “이스라엘이 불레셋에 패하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다(1-11절)”을 읽었습니다. 보불전쟁(普佛戰爭) 혹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년 7월 19일 ~ 1871년 5월 10일)은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 제2제국과 간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전쟁의 결과는 독일의 승리로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을 획득하였으며 50억 프랑의 전쟁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두 나라는 기독교 국가로 서로 적군을 물리쳐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우산 장사와 나막신 장사는 서로 다른 날씨를 기도할 것입니다.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실까요? 분명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기도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을 늘 마음에 두는 사람의 기도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선민 이스라엘은 어찌하여 블레셋에 패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법궤까지 빼앗겼을까요? 진지하게 질문할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름뿐인 사람과 제구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른바 명목상(名目上)의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탐하게 될 때, 그는 무서운 범죄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아를 죽음의 전쟁터로 보내 전사하게 만듭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리 없습니다. 법궤를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겼는데 그 이유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법궤의 가치는 그 내용물을 어떤 비싼 궤 안에 두느냐에 달린 게 아니었습니다. 그 법궤가 가르치는 내용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느냐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제 구실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 우상처럼 감싸기만 하는 법궤는 더 이상 그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패배하게 하고, 빼앗겨야 할 것들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 곁에서 동행하십니다. 법궤가 이스라엘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 다른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장 잘 가르치는 실물입니다. 법궤를 통해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자만하거나, 40년 광야 생활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현존을 너무 감격한 나머지 우상처럼 떠받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기억하며 날마다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갖는 것으로 충분한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