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 참여를 긍정하는 신앙자세. / 삼상 11:1-15.
묵상자료 7362호(2021. 7. 13. 화요일).
시편 시 18:23-24.
찬송 46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름에 까뮈 하면 제일 먼저 소설 [이방인]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마에 태양빛이 심벌즈의 음처럼 부서져 내리는 걸 못 참았던 주인공이 등장하니까요. 하지만 여름의 까뮈라면 그의 첫 에세이 집이면서 장 그레니아의 <섬>과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과 더불어, 20세기 프랑스 문학 3대 걸작으로 꼽히는, <결혼 여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결혼 여름에는 까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알제리의 타파사 마을 얘기가 가득합니다. 뭣 보다 부조리 작가로 유명한 그가, 사실은 사랑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여름과 바다가 가득한 다음과 같은 글에서 유감없이 나타냈습니다. “벌써 바닷가로 가슴을 열고 있는 마을을 지나, 우리는 도착한다. 도처에 장미 빛 부겐베리아 꽃이 빌라들의 담 너머로 피어오른다. 뜰 안에는 아직 희미한 붉은 빛의 부용화가 꽃잎을 열고, 크림처럼 두툼한 차양 장미와, 길고 푸른 붓꽃의 섬세한 꽃잎이 흐드러진다. 우리는 사랑을 만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우리는 교훈을 찾는 것도 아니요, 위대해 지는데 필요하다는 그 어떤 쓰디쓴 철학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굳이 이곳에 혼자 있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는 흔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곳에 찾아오곤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랑의 얼굴이 지어보이는 맑은 미소를 보곤 했다. 여기에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릴 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 이 세상에서는 사랑이라는 것 단 한가지뿐이다.” 영광이란 그렇게 크고 대단한 아주 높거나 멀리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맑은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그게 생의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 그런 곳이라면 어디나 다 까뮈가 그토록 예찬해 마지않았던 타파사 마을일 수 있다는 것. 삭막한 도시의 메마른 일터에서 일수록, 가끔씩 되새겨보면 좋을 그런 구절들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16일 방송>b.
2. “사울이 암몬을 쳐 이기고 등극하다(1-15절)”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상식과 보통의 행동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롯이 아내를 잃고 두 딸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아비의 자손을 걱정한 롯의 두 딸이 아비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태어난 큰 딸의 아들은 모압이라 이름 짓고, 둘째 딸이 낳은 아들은 암몬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제외되자, 적개심을 품고 자주 분쟁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상설 군대는 물론 조직화 된 군대가 없었습니다.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시고, 백성들을 강하게 정신 무장을 시켜 적군을 물리친 때문입니다. 블레셋이나 모압 그리고 암몬은 잘 조직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항상 불안을 느끼고 있었는데, 사울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한 달 후쯤, 암몬의 장수 나하스는 이스라엘의 야베스 길르앗을 침공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항복 조약을 맺으려고 했는데, 암몬의 나하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른쪽 눈알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결국 야베스의 장로들은 말미를 얻었고, 이를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기별하여 알린 것이었습니다.
전갈을 받아든 사울은 크게 분기가 솟았는데, 하나님의 기운이 그를 응원한 때문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짝을 이뤄 쟁기를 끄는 두 마리 소를 끌어와 각을 떠서 이스라엘 전 지역에 보내며, 사무엘과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 모양이 될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백성들이 이스라엘 사람 30만 명, 유다 사람이 3만 명 합이 33만 명이었습니다. 사울을 그 군대를 가지고 항복하러 간다는 거짓말을 앞세우고, 암몬 적진에 쳐들어가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마침내 사울을 과소평가하던 일단의 사람들을 처벌하려고 할 때, 사무엘은 야훼께서 승리를 안겨준 날에 사형은 말이 안 된다며 허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길갈로 가서 사울의 왕위 즉위식을 갖고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참여는 사울의 애국애족심 뿐 아니라 대범한 적진에 뛰어드는 전략에서도, 그리고 하나님의 승리를 인간의 공로로 바꾸려는 어리석은 시도까지도 무효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역사 참여를 진지하게 긍정하고 감사하는 그런 신앙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묵상하게 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