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말씀은. / 삼상 15:1-3, 7-23.

박성완 2021. 7. 19. 00:00

묵상자료 7368(2021. 7. 19. 월요일).

시편 시 18:41-42.

찬송 8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하면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 중 하나로, 평이 좋은 세탁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매일 그리고 특별한 날 입을 옷을 다뤄줄 세탁소야말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비중을 갖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무성의하거나 무책임한 곳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특히 많이 받게 되는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세탁소 입장에서는 반대로 스트레스를 주는 손님들이 특히 많은 곳이기도 하겠지요. 협상 전문가인 스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세탁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이해하고 기억하라고 얘기 합니다. 첫 번째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대개 세탁소 주인들이 손님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영어에 서툰 이민자들이 세탁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자부심을 인정해 주라. 두 번째로 세탁소 주인들은 손님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사업이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맡길 때부터 흠집이 난 옷을 받고 나중에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숱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셔츠에 얼룩이 남았다는 이유로 300달러를 요구하기도 한다. 두 번째의 경우엔 몇 년 전의 일이 다시 생각나게 됩니다. 한 미국인 판사가 한국인 부부가 경영하는 세탁소에 800달러짜리 바지의 수선을 맡겼지요. 그런데 세탁소에서 바지를 분실하자, 자그마치 600억 원에 해당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600억 원에는 바지 분실에 대한 벌금과 위로금,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다른 세탁소로 가는 데 쓸 렌터카 비용이 명시돼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들이 있으니, 그야말로 모든 요구 조건을 다 들어 주었다가는 세탁소 문을 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면 걸핏하면 옷을 분실하거나 바꿔 가져다주기도 하고 옷에 딸린 벨트를 빼놓는 실수를 하는 세탁소는, 맡기는 쪽의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지요. 좋은 세탁소와 좋은 단골을 만나는 것도, 일상의 소중한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724일 방송>a.

 

2. “사울이 아말렉을 쳐부수고 야훼께 버림받다(1-3, 7-23)”을 읽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본질에 충실한 사람과 비본질에 충실한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질에 속할지라도 중요성을 따르지 않는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은 물론 기르는 짐승들까지 모두 죽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군대는 아말렉 왕 아각은 포로로 잡고, 양과 소들 중에서 좋은 놈들은 죽이기가 아까워서 전리품으로 챙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며 파면시킬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성경말씀을 읽는 평신도 독자들 중에는 마음이 편치 않으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실 일을 하셨으니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말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시다고 말씀하고 있기도 합니다(23:19, 11:29). 동시에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말씀도 더러 나옵니다.

   최근에 묵상식구 한 분이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원어 성경은 물론 영어 역본과 우리말 역본 등을 대조하면서 많은 차이점들을 발견하고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문제들이 생기느냐고 말입니다. 가령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릴 때 준비한 제물 중에는, 공동번역은 “3년 된 황소 한 마리라고 했는데, 개역개정엔 수소 세 마리를 드렸다고 말입니다(삼상 1:24). 이런 차이는 사해 사본과 칠십인 역(LXX)에서는 “3년 된 수소 한 마리, 마소라 본문(MT)에서는 수소 3마리로 기록된 때문입니다. 거기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인 타낙(토라, 네비임, 케투빔의 첫 글자 T, N, K에 모음 A를 넣음)를 참조할 경우, 또 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차이점들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약점을 더 잘 알 수 있으며, 더욱 더 성경의 중심사상에 신앙의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이런 차이점들은 성경의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실수와 약점이라는 뜻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후회나 한탄과 같은 말씀은,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이해를 고려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보신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신다는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언어를 빌릴 수 밖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을까, 용기를 내 봅니다. 잘 번역된 우리말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