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진정성 없는 사울의 회개. / 삼상 15:24-35.

박성완 2021. 7. 20. 00:00

묵상자료 7369(2021. 7. 20. 화요일).

시편 시 18:43-45.

찬송 20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노래 도미에는 19세기의 풍자 만화가이자 사실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화가였습니다. 현대 만화가 그로부터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지요. 무엇을 그렸던 그는 산업화의 열기에 휩쓸린 당대 프랑스 사회와 도시 하위층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세탁부> 역시 그런 그림 중의 하나입니다. 커다란 세탁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여인이 일을 마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 여인의 구부린 몸과 옆구리에 낀 쏟아질 듯 한 세탁물이며, 정확히 묘사 되지 않은 흐릿한 눈코입이 가파른 계단과 함께, 여인의 고단한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여인의 등 뒤쪽으로 그녀가 일하고 왔을 세상은, 더없이 환하고 눈부십니다. 그녀를 둘러싼 어두운 그늘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지요. 그럼에도 그녀의 고단함이 무조건 절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바로 손을 잡고 있는 아이 때문입니다. 그 아이를 키우느라 여인이 세탁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 때문에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듯도 합니다. 무엇보다 도미에가 이 그림을 그린 시대부터 얼마동안은, 프랑스에도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아이들이 열심히 살아서 꿈을 이루던, 소위 개천에서 용난다든지,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시대가 있어서 더 희망적이었지 않았을까? 가파른 계단을 다 오른 세탁부 여인과 아이의 새로운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724일 방송>b.

 

2. “사울이 아말렉을 쳐부수고 야훼께 버림받다 2(24-31)”사무엘이 아말렉 왕 아각을 처형하다(32-35)”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이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2). 이 말씀의 뜻은 용서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용서를 받았다는 말이며,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잘못도 용서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였지만,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하다는 말씀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울이 저지른 죄가 너무 엄청난 것이란 말인가? 라는 물음에서부터,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한다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모순되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죄와 용서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죄란 목표를 빗나가는 일체의 생각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죄라는 헬라어 하말티아가 갖고 있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빗나갔던 목표를 향해서 되돌아서는 일체의 생각과 행위입니다. 회개라는 헬라어 메타노이아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용서란 말의 성서적 의미는 지워버린다, 혹은 잊어버린다는 아페시스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심으로 혹은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마음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이 참된 용서라는 뜻이었습니다.

   사울은 확실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습니다. 목표를 빗나간 마음과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런 죄악에 대한 사울의 변명을 엿볼 수 있는 세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군인들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24). 둘째 이유는 사무엘이 전한 사울의 죄는 빈말이나 변심을 부렸다는 것입니다(29). 그리고 셋째 이유는 사울이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30). 이런 지은 죄에 대한 변명들 속에서는 빈말로 하는 혹은 진심이 아닌 회개에 불과했다는 말입니다. 예전 고향 교회 주일 예배에서 평신도 한 분이 대표기도를 드리는데, 기도자가 달라도 기도 내용은 항상 똑 같은 내용이 있었는데, “지난 한 주간에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많사오니 다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문구처럼 말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듣기 힘들어 하셨을까 생각해 보셨는지요. 차라리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지은 죄를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 제가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짓지 못하도록 때마다 깨우쳐 주시고, 죄와 싸워 이길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진심 없는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셨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