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절망을 물리치는 것은 신앙. / 삼상 16:14-17:11.

박성완 2021. 7. 22. 00:00

묵상자료 7371(2021. 7. 22. 목요일).

시편 시 18:49-50.

찬송 36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골의 전통적인 집들에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돌담은 우리만의 건축법은 아니지요. 프랑스는 그 돌담을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바로 포도밭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포도밭 사이사이에다 쌓았지요. 포도밭이 많은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을 가면, 그런 돌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와인 중에는 <끌 로드 부조> 즉 부조 마을의 끌로 돌담으로 두른 포도밭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국보급 문화제 하나를 소유한 것처럼 생각된다는 와인이지요. 그러나 와인 자체의 유래가 바로 수도원에서 시작됐듯, 포도밭의 돌담도 실은 수도원과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종교 생활 겸 은둔생활을 하려고 했던 초기 수도자들이, 속된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다는 의미로, 황량한 그곳에 수도원을 짓고 돌담을 쌓은 겁니다. 그랬던 수도원과 포도밭의 돌담은 아직도 그대로 남았는데, 소통을 더 많이 고려하던 우리의 돌담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라져도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시간으로 쌓아올리는 것들이, 막돌 허튼층쌓기인지, 다듬은 돌 바른 층 쌓기가 되고 있는지, 자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되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730일 방송>b.

 

2. “다윗이 사울의 궁중악사로 채용되다(14-23)”이스라엘이 골리앗의 도전을 받다(17:1-11)”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사울을 왕위에서 폐위한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중에서 막내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 말씀하셨습니다(삼상 16:1, 12-13). 그런데 오늘 첫 단락에서는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사울왕의 궁중악사가 되었다는 것이 부적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훗날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은 유다인들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삼하 2:4). 그러니까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것은 하나님에 의한 실질적인 것과 의례적인 것으로 나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후 지금까지 불레셋 혹은 팔레스타인에 의해서 많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불레셋은 자신들의 고토(古土)를 찾기 위해서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살기 위함입니다. 이 두 나라의 싸움은 아주 오래고 그리고 길고 긴 것이지만, 일반 상식적인 차원과 신앙적인 차원에서 섣부른 대답을 하기 어렵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세상 끝날 때까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불레셋은 반드시 자신들의 땅을 되찾고자 하는 싸움을 준비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나라의 군사들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는데, 불레셋 진영에서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가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놋 투구와 비늘 갑옷, 그리고 놋으로 만든 창을 들고 나왔는데, 자신과 1:1로 싸울 자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둘이 싸워서 이기는 쪽으로 승패를 겨루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당함이란 말할 수 없어서, 이스라엘 병사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나 제나 우리들 삶이란 정신적인 무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삶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208년 전에 태어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은 절망이라는 병에 의해서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죽음 이전에 정신적인 죽음이 먼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희망의 최종 보루는 신앙인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 두는 신앙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절망들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3. 최근 지인 한 분이 낙상하여 몇 달째 고생하고 계십니다. 오늘 같이 찌는 더위에 가장 좋은 해답은 목물(등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실에서는 반드시 욕실화를 신어야 안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