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제일 덕목은 이해(理解). / 삼상 19:1-18.
묵상자료 7376호(2021. 7. 27. 화요일).
시편 시 19:12-14.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들은 “사람은 못돼도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라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짜증을 이대로 방치해두었다가는 주위 사람들한테나 자기 자신한테나 고약한 괴물이 될게 뻔합니다. 어느 책에선가는 짜증을 어떤 중요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단순한 신경질일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제대로 된 화나 분노하고는 전혀 다른, 상황을 하나도 좋게 바꾸지 못하는 악성의 감정일 뿐이라는 거지요. 이제야 비로소 적극적으로 짜증 해석법과 극복법을 찾고, 그 처방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대청소를 했습니다. 더운 날에는 주위의 정돈 상태가 감정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요. 그리고 가능한 슬픈 책이나 슬픈 영화를 찾아봤습니다. 슬픔은 사람을 겸손케 하고, 겸손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크게 해주니까요. 다음엔 사람이나 일 처지에 대한 기대치를 한 단계씩 낮췄습니다. 그리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대해서는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가령 다음 모임에서는 다 같이 회비를 내자고 제안해 볼 생각입니다. 다이어트나 운동에 대한 생각에도 너무 얽매이지 않기로 하고, 머리도 기어이 시간을 내 잘 다듬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빨리 짜증을 가라앉히고 가능한 다시는 그 괴물과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미리 대처하겠다는 것, 그것이 자신과 한 이 여름의 최고 휴가법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26일 방송>b.
2. “요나단이 다윗을 감싸주다(1-8절)”과 “남편을 살린 미갈의 슬기(9-1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 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혈육의 정을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흔히 동양에서는 <관포지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중과 포숙의 우정은 천하에 따를 자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중과 포숙은 제 나라의 재상이었는데, 이 둘의 우정이 대단했던 것은, 이 둘 사이에는 문제가 될 만한 일들도 오히려 우정을 깊이 다지는 기회가 될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령, 둘은 젊은 날 동업을 하였는데, 관중이 이익금은 독차지 하게 되어 포숙이 속이 상할 법 한대도, 관중의 집안이 가난하니 그럴 것이라 감싸주었고, 함께 징집되어 군대에 갔는데 관중이 3번이나 탈영 비난받아 마땅한대도 불구하고, 포숙은 늙으신 어머니를 공양하기 위한 관중의 효심이라 변호하였다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이해의 관계란 넉넉하게 덮어주고 감싸주는 경우를, 오해라는 관계는 전후 사정이나 일의 실마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를, 곡해의 관계란 불문곡직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왕자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이해의 관계로 규정짓는다면,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어느 날 요나단은 아버지로부터 다윗을 죽여야 하겠다는 속엣 말을 듣고는, 다윗에게 이를 알릴뿐 아니라, 그가 피해 달아날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윗을 변호하는 말을 건넵니다. 다윗은 나라와 왕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했던 역사적 사실을 열거합니다. 그러니 다윗을 죽이는 일은 죄 없는 피를 억울하게 흘리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왕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는 대답을 얻어내고는 다윗을 궁으로 불러들여 악사로써 임무를 수행하게 합니다. 아들로써 아버지의 악한 의중을 파악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요나단의 용기 있는 정의감은 사울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입니다. 흔히 권력자들은 외롭다고 합니다. 자신의 판단 여하에 따라서 국가와 백성에게 큰 유익을 가져올 수도 있고, 반대로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공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근친들로 인해서,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오곤 했습니다. 그런 근친들이란 바로 아첨꾼들입니다. 아첨꾼들의 특징은 왕이나 권력자들로 하여금 대의보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 이 맛에 길들이게 되면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부정축재와 불의한 재판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