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5. 성령강림절 후 열두째 주일] 우리가 먹어야 할 하늘의 떡. / 요 6:51-58
묵상자료 7395호.
시편 시 23:1-3.
찬송 3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곡의 음악이라도 가슴으로 듣고 있는가? 한 권의 책이라도 마음모아 읽고 있는가?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뜨겁게 흘리고 있는가? 한 가지 일이라도 정성껏 하고 있는가? 단 하루라도 찬란하게 살고 있는가?” 정용철 님의 <진심으로> 의 한 구절입니다. 정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순간순간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것만큼 가치 있는 하루를 만들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년 8월 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두째 주일로, 요한복음서 6:51-58의 말씀을 본문으로 “우리가 먹어야 할 하늘의 떡”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전형적인 계시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를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매일 먹어야 할 양식 때문에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51-52절).
많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닙니까?”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가요? 우리는 굶주림 속에서 사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TV를 통해서 시청하고 있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양식 그리고 편한 잠자리가 절실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잉여농산물 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전쟁입니다. 정치적인 불안정이나 소수 민족의 독립투쟁 뿐 아니라, 탐욕에 눈먼 사람들이 양식을 팔아 무기를 사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강대국들이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부추기는 현상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고도로 발전된 돈벌이 수단으로 전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이 대안입니다(53-56절).
루터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예수 인류의 소망과 기쁨>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서, 막힌 담을 헐고 전혀 다른 두 세계를 하나도 만드는 평화를 이룩할 유일한 힘으로, 예수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대안으로 삼는데 공감하는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내 살과 내 피”를 의미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제정한 성찬예식은 여전히 오해와 곡해 속에 있습니다. 성찬에서 먹고 마시는 떡과 잔에 예수님의 말씀이 실재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신앙과 달리,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은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에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신앙이 그런 오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스틴의 <변증서1>도 세례자들만 모여 문을 잠그고 행한 성찬식의 오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양식은 물론 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강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57-58절).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매일의 양식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매일의 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선포되자 매점매석하는 꼴사나운 모습이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이제는 바이러스를 이길 백신도 선진국이 독점하는 이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두고 있는 국가들로, 이런 나라들과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이 하늘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꼰대 기독교인이 중심을 이루는 이른바 바이블 벨트에 살고 있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신앙인데, 링컨처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 신앙의 문제는, 성경의 중심점을 망각하는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바라시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오늘은 일흔 여섯돌 광복절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