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 막 8:22-30.
묵상자료 7397호(2021. 8. 17. 화요일).
시편 시 24:1-3.
찬송 9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아직 존이 결혼하기 전입니다. 알마는 존에게 이 여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합니다. 몸이 약한 알마로썬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가 힘들다는 호소였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존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견디기 힘들다는 호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존은 그런 알마의 마음을 완전히 눈치 채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알마에게 오히려 충고를 하지요. 못 견디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리 새로운 날 새로운 계절이 와도 또 똑같이 못 견디게 괴로울 거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기운을 내서 이 여름부터 당장 새롭게 보내라고 충고합니다. 알마가 그 충고를 마음 깊이 새겨듣고, 태도나 행동을 좀 더 새롭게 바꾸었더라면, 혹시 존과의 관계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설사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존의 결혼 후 그 상처 때문에 그토록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날씨나 더위 때문이 아니라, 진척 안 되는 사랑 문제나 일 때문에, 이 여름이 견디기가 힘들고 막막하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막연히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고, 빨리 다른 시간 다른 계절이 왔으면 기다리기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지금 당장의 시간부터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여름과 연기>에 나오는 대사, “하루 낮이 지나면 다음 낮이 오고, 하루 밤이 지나면 다음 밤이 오고, 그러다보면 조만간 여름이 다 지나가고 어느 새 가을이 될 거요. 그러면 그 땐 당신은 또 이 가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게 될 거요.” 이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8월 7일 방송>b.
2. “벳세다의 소경(22-26절)”, “베드로의 고백(27-30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우선 고백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고백이란 마음속에 깊이 담겨진 생각이나 뜻을 입 밖으로 꺼내놓는 일을 말합니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랑의 말을 꺼내놓을 때 사랑고백이라고 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신앙을 꺼내놓을 때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백이란 무척 주저하고 혼자 고민했던 것들을 용기를 내어서 입 밖으로 꺼내놓는 일이기에 그만큼 유불 리가 따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고백은 적어도 신앙인들에게서는 매우 중요한 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고향의 교회 형님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 한 자매님을 사랑했는데, 여러 달 망설이다가 자신은 개신교인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약속이 취소될 뻔 했는데, 다행히 처가 쪽에서 출가외인이 될 거라며 양보를 했다 합니다. 로마 교외에 있는 큰 지하교회(카타콤베)에는 한 여인의 대리석 상이 옆으로 누워있는데, 그녀는 당시에 유명한 가수로 황제의 사랑을 받았다 합니다. 그런 그녀가 기독교인으로 붙들려 갔고, 황제의 권유에도 끝내 거절하다 목이 잘려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일은 지금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일행은 빌립보의 가이사랴를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노중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말입니다. 제자들은 여러 이름들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앞장을 서더니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말한 히브리어의 메시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구세주를 따르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는 이 질문을 오늘 우리들에게 던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한국 개신교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을까 자문해 볼 때, 슬프게도 몇 사람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세습으로 물의를 빚은 어느 유명 목사는 예수님을 자신의 탐욕을 채워줄 우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구주로 믿는다면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눈멀게 해서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