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하며 살아가는 관계들. / 막 10:32-45.
묵상자료 7406호(2021. 8. 26. 목요일).
시편 시 25:19-22.
찬송 49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소년들을 위한 예절론]에 나오는 지침 중에는, 몇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지침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가령 식사와 식탁 예절 중에는, “물 잔에 담긴 물을 마시려거든, 입안에 든 음식을 완전히 먹은 다음에 마셔라. 음식을 뒤적거리며 먹지 말라.” 같은 것들이 그렇지요. 반대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웃음이 나오는 지침들도 있습니다. “식사 중에 콧물이 나오면 손 말고 옷에다 직접 닦으라.”든지, “고기가 나오면 손으로 알맞게 잘라서 자기 접시에 갖다 놓으라.” 는 것들이지요. 물론 그 때는 아직도 손으로 식사를 하던 때였으니까, 그런 지침 등이 가능했겠지요. 그런데 에라스무스의 [소년들을 위한 예절론]이 갖는 생명력과 설득력은, 단지 그 지침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가 아닌가에 있지 않습니다. 단순한 예절 법을 넘어서 인생 전체에 대한 비유적인 일깨움을 준다는 데 있습니다. 가령 식탁에 제대로 앉지도 않고 음식에 손을 대는 건 금하라는 지침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지침의 진정한 속뜻은, 음식을 넘어서서 인간이 갖기 쉬운 모든 종류의 탐욕에 대한 경고에 있지요. 특히 식탁에 앉기도 전에 음식에 손부터 대듯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성취의 단 맛부터 탐내는 조급함과 경박함에 대한 경고에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때때로 이 철학자의 예절 법을 되새겨 보는 일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서서 인생이나 인격에 관한 전체적인 지침을 얻는 큰 소득이 되리라, 거기에 바로 우리가 고전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서, 오늘은 철학자 에라스무스의 한마디, “식탁에 제대로 앉지도 않고 음식에 손을 대는 건 금해야 한다.”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8월 13일 방송>b.
2.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32-34절)”과 “섬기는 사람이 다스린다(35-45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을 첫 번째 단락입니다. 나이든 노인을 대하는 젊은이들은 진지하지를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같은 연배(年輩)의 노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심각하게 생각하는 본인만 마음이 애달픈 것입니다. 얼마 전 지인 한 분이 초저녁에 잠들었다 깨어나면 잠이 오지 않아서 세상 걱정을 다하다 보면 동이 튼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 아니었어? 라며 위안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지병이 있다 해도 곧 회복되는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의 현기증만으로도 괜스레 걱정이 몰려듭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모습을 한 풍경화에 담아 보았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십자가를 지시려는 길임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고, 이방인 로마인의 손에 넘어가 온갖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마침내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주님의 표정은 심각하다 못해 창백합니다. 그런데 듣고 있는 제자들은 마치 또 한 번의 잔소리를 듣는 표정들입니다. 벌써 세 번째나 같은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짜증이라도 낼 기세입니다. 아직 이런 풍경화를 그린 화가는 없는 모양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가끔 말씀하셨습니다.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이러다 죽는 건 아닌지 몰라.” 그런데 저는 귓등으로 흘려버렸습니다. 목사가 되었어도 한 달 버티기 힘든 월급으로 병원 가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그렇게 아내와 자식들을 방치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료보험제도가 여러 가지 점에서 공단 부담으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병원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엊그제 최장수 연속극 <전원일기>에서 아픈 아내에게 크게 역정을 내는 최불암이 꼭 제 모습 같아서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제 몸은 제가 알아서 관리해야지, 아프기 전에 약도 먹고 밥도 잘 먹어야지.” 꼭 내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이를 제자들에게 벌써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지만, 누구 하나 빈 말이라도 호들갑조차 떨지 않고 묵묵부답입니다. 아마도 동상이몽도 아주 큰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왕위에 오르실 때 내가 차지할 자리 확보를 꿈꾸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가는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가만히 손을 잡아줄 수만 있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