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 그 현주소. / 막 10:46-52.
묵상자료 7407호(2021. 8. 27. 금요일).
시편 시 26:1-4.
찬송 48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파리 출신의 작가 마르탱 빠주의 산문집 <비> 속의 한 마디입니다. “우리의 혹성처럼 우리의 몸도 물 70%를 함유하고 있다. 우리 내부의 물방울들은 자력의 원리에 따라, 하늘에서 떨어진 자매들에게 이끌린다. 따라서 우리의 만남은 가족 간의 재회이다.”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마르탱 빠주는 파리의 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파리의 대표 작가입니다. 1975년생인 그는 20대에 야간 경비원에서부터 축제 안전요원, 그리고 기숙사 사감 등, 많은 이색적인 직업들을 경험했지요. 그러다가 작가가 돼서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아마도 사랑이야기 같은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에 깃든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특징 때문에, 그는 40대인 지금도 여전히 파리의 낭만파 청년작가로 불리지요. 그런 그가 최고의 문학적인 소재인 비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빠주는 비 라는 소재하나만으로도 한 권의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8월 14일 방송>a.
2. “여리고의 소경(46-52절)”을 읽었습니다. 바디메오라 이름하는 한 소경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본디부터 여리고에 산 그곳 태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예수님이 여리고를 방문하셨을 때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소리에서 예수님이 자기가 있는 그곳을 지나가고 계시다는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은 눈치가 100단입니다. 청각장애인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눈치를 차리고, 시각 장애인들은 사람들의 말소리에서 눈치를 차립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어느 논객이 일본인은 수치(羞恥)에 민감하고, 중국인은 무치(無恥)에 가깝고 한국인은 눈치가 빠삭하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많은 장애우들은 눈치가 100단쯤 됩니다. 저를 찾아온 시각장애인은 자신을 태운 택시가 같은 곳을 두 바퀴 세 바퀴를 돌아가는 것을 훤히 알고 있다 했습니다. 그러나 달라는 요금은 지체하지 않고 지불해 왔다합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수단과 방법이 있다면 기필코 눈을 뜨고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이 여리고 그것도 자신이 앉아 구걸하는 그 주변을 지나가시는 것을 눈치로 알았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디메오는 자신이 내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돕기는커녕 꾸짖었습니다. 그들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님은 그 소경을 불러오게 하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신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오래전부터 이런 막다른 벼랑 끝을 더듬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눈치는 무한대입니다. 주님은 확인하셨습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그는 눈을 뜨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를 살린 것은 그의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바디메오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은 무엇이 다릅니까? 먼저 우리의 믿음을 확인해 봅시다. “주님,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바로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뜻대로 살고 싶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우리의 기도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바디메오의 믿음은 달랐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어둠 속에서 광명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아멘.
3. 지난 7월 29일에는 “어머님의 은혜”, “산꼴짝의 다람쥐”, “눈을 들어 하늘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등의 동요와 찬송가를 작곡하셨던 박 재훈목사님이(99세), 8월 22일에는, “둥글게 둥글게”와 “내 맘의 강물” 등을 작곡하신 이 수인 선생께서(82세) 별세 하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