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 막 14:27-42.
묵상자료 7421호(2021. 9. 10. 금요일).
시편 시 29:10-11.
찬송 49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부부는 과일을 전혀 먹지 않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수박이나 복숭아 같은 한두 가지 종류가 아니라, 모든 과일을 먹지 않습니다. 부부가 똑같이 그러니 주위에서는 신기하다고 합니다. 체질이 똑 같나보다고 천생연분이라고 얘기합니다. 모르는 소리입니다. 거기에는 실은 함께 겪은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결혼한 지 1년쯤 됐을 때, 신랑이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안 맞는다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하루를 일해도 자기의 사업을 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작한 일이 과일 가게였습니다. 그냥 과일만 파는 가게만이 아니라, 바로 옆에 과일 카페도 냈습니다. 온갖 종류의 과일 주스를 파는 카페였습니다.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으니 잘될 것 같았습니다. 주위에서도 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습니다. 물론 비용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모았던 돈 전부와 은행 대출금까지 꽤 무리해서 들였지요. 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다 잘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렸습니다.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였습니다. 폭우가 아니라, 폭력 같았습니다. 밤새 내리고 아침에도 또 내렸습니다. 동네에 물이 찼습니다. 1층에서 하던 자신들의 과일 가게와 과일 카페에도 물이 찼습니다.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겼습니다. 다들 대피해 나갔는데, 자신들은 버티다 3층의 빈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옮겨놓은 과일들로 식사를 해결하면서, 가게의 과일이 물에 떠내려가고 과일카페의 냉장고가 넘어지고, 소파가 물에 떠내려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8월 24일 방송>a.
2. “베드로의 장담(27-31절)”과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심(32-42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을 첫째 단락입니다. 우리는 성숙한 사람과 미숙한 사람을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베드로와 같은 이는 미숙한 사람의 전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미숙함을 들어내곤 하였습니다. 그 하나가 남보다 빨리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 순발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는 일본의 교회 지도자 내촌감삼이 쓴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하루 세 번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한다는 뜻인데,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계획하고 정성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을 잃지 않았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하고 말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미숙함을 자주 들어냈다는 말은 이런 자신을 살피고 반성하는 일을 하지 않은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에는 주님께서 매우 비장한 어조로, 제자들이 모두 주님을 버릴 것을 말씀하셨고, 이에 대해서 어김없이 베드로가 앞으로 나서서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자신만만해 합니다. 그때 주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다.”고 말입니다. 슬프게도 주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은 모두 그날 밤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옛날 제가 저질렀던 어리석음을 반추하곤 합니다.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신 구절을 읽으면서,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주 당당하게 자신 있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미숙한 말인지를 곧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좁은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것이 제게 불가능한 일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보다는 쉬운 일을, 꼴찌보다는 1등을, 책망보다는 칭찬을, 배고픔보다는 배부름을 선호(選好)하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조금 더 배려해서 젊은 시절까지는 눈감아 줄 수 있어도, 어른이 되어서까지,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하면서까지 그런 연약하고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천국에 5층집을 확보해 놓은 분들이 참 많습니다. “죽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제가 사는 아산의 유서 깊은 공세리 성당을 찾아가서 박씨 3형제의 순교비를 읽어보셔야 합니다. 목이 잘려 죽게 될 자리에서 말했다는 삼형제는 “내 평생 주님을 실하게 모시지 못했는데, 오늘 주님께서 날 부르셨다.”고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저는 구원의 3가지 시제라 말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과거시제, “구원받는다.”는 현재 시제, 그리고 “구원받을 것이다.”는 미래시제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3가지 시제를 모두 말했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 시제만을 고집하는 미숙한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가야 하겠습니다.
3. 어제는 묵상식구 이선구 장로님(이선구 내과/연신내)의 의료자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차례 중국 선교의료선교 활동에 열정을 쏟으셨던 귀한 장로님이십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