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십자가가 필요한 우리 삶. / 막 15:21-32.
묵상자료 7428호(2021. 9. 17. 금요일).
시편 시 31:9-10.
찬송 36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구두끈을 묶을 때 매듭을 잘 짓지 못하면, 조금만 걸어도 쉽게 풀려서 다시 묶어야 합니다. 물건을 포장할 때도 그렇고, 매듭은 끈을 사용하는 우리들의 일상 매우 자주 사용되는 기술이기도 하지요. 포장된 물건의 매듭이 아무렇게나 되어 있으면, 그것을 풀려고 끙끙대다가, 기어이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경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좋은 매듭은 한번만 잡아당겨도 참 잘 풀리는데요. 슬기로운 우리의 선조들은 이 매듭을 이용해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면서 또 아름다운 모양으로 오랫동안 간직하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끈을 소재로 그 끝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맺고 조여서,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인 매듭. 조선의 궁중 의상이나, 국악기의 장식품, 또 노리개 등으로 사용되었던 이 매듭은, 홍색 남색 황색의 3원색을 기본으로 해서, 연두색과 분홍색 보라색 자주색 옥색 등을 사용해서 만든, 돌의 매듭, 국화매듭, 나비매듭 등, 참 여러 종료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매듭 만드는 장인을 국가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또 그 기술을 발전시켜서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매듭 작품이 많고, 또 지금도 한복 치장을 하는데 사용을 합니다. 매듭은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도 잘 매듭지어져 있는데요. 새끼를 꼬아 만든 각종 꾸러미를 비롯해서, 실로 단추를 달 때도 응용되지요. 특히 야외활동에서의 매듭은 그 기능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캠핑, 하이킹, 등산, 또 낚시 등을 하는 사람은 매듭을 참 잘 매고 풀던데요. 그 모습이 마치 흐트러진 것을 잘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 같은 이 매듭.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9월 1일 방송> a.
2.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21-32절)”을 읽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던지는 질문들 가운데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은 “하나님께서 꼭 십자가를 져야만 인간의 죄를 씻어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질문의 배경에는 얼마든지 자기 희생 없이 용서해 줄 능력이 있는 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무능한 인간이기에 자식을 위해서 온갖 고생을 자초하는 것과는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도 깔려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존심을 위해서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절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절대 죄인인 인간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그 모든 죄악의 대가를 다 짊어지셨다고 말입니다. 이 또한 믿음의 영역으로 종결될 것입니다. 저는 짧은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자신은 제대로 된 식사를 포기하고 부엌을 드나들며 누룽지 한 바가지를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 하셨던 저의 어머니도 그랬고, 젊은 학도들에게 정의로운 사회 올바른 교육의 미래를 내다보게 하려고 문교 당국에 항명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던 선생님들이 그랬습니다. 시골 고향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보다는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이게 주님의 뜻이라고 고집을 피우다 외면을 당하던 대학생 선배가 그랬습니다. 십자가는 앞장서서 거짓과 불의에 온 몸으로 맞서는 일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부산 신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들에게 뜻도 제대로 모르고 기운차게 내 뱉었던 말 중에 “No Cross, No Crown” 이란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을 부여안고 미국 유학생활도 그리고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 길은 가르칠 길만이 아니라 살아갈 길이었습니다. 어제는 마을 단톡방에 마을길이 누수가 되고 있다며 걱정하는 사진과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전 10시에 찍은 물기가 시작하는 사진과 정오에 찍은 물기가 많이 번진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외출에서 돌아오는 3시에는 시청 수도과에서 포크레인과 소형 화물차가 와서 도로를 파헤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일일 수 있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큰 일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 마을을 위해서 작은 십자가를 짊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는 카톡을 날렸습니다. 우리들 가정에도, 우리들 마을에도 그리고 우리들 교회에도 이런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평안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묵상식구 중에 한 분은 자신의 자동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면서 옆 차의 눈도 쓸어주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그렇게 작은 십자가를 지노라면 언젠가는 제법 큰 십자가도 짊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어떤 모습이든 십자가를 짊어지는 행복한 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3. 오늘 저의 맏손자가 두 주간의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합니다. 최전방에서 CCTV 모니터를 관측하는 보직이라 합니다. 조국 수호에는 저마다의 다른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