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면. / 빌 2:12-30.
묵상자료 7434호(2021. 9. 23. 목요일).
시편 시 31:23-24.
찬송 4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날개를 달지 못한 새들은 둥지가 없다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바로 둥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둥지에는 문이 없기 때문에, 새들은 하루 종일 곁에서 지켜보는데, 그 순간 새들은 하늘을 나는 것을 포기하고, 문지기이면서 문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자라난 새끼 새들이 스스로 하늘을 날게 되면, 새들은 둥지를 버립니다. 새들이 떠난 둥지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데, 새들은 자신이 품을 만큼의 둥지를 만들고, 또 그 둥지 역시 시간이 지나면 비와 바람에 흩어져 자연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둥지는 만들어지고 흩어졌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에 둥지를 틀기도 합니다. 그 사람과 머물렀던 둥지도 새들의 둥지처럼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라진 자리가 바로 우리 삶의 도드라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흔적이 되고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9월 5일 방송> b.
2. “하늘의 별처럼 빛나라(12-18절)”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19-30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이 절절히 녹아 있는 구절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권면으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첫째 권면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구원의 현재시제입니다. 구원의 확신 한 번으로 구원받았다는 주장은 구원의 과거시제를 뒤엎는 말씀입니다. 둘째 권면은 “무슨 일이든 불평하거나 다투지 마시오.”는 말씀입니다. 어찌 불평불만이 없을까요만,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강조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별처럼 빛을 내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를 떠올렸습니다. 어떻게 하늘의 별이 될 수 있을까를 잘 가르치는 대목이 그의 <연금술사> 맨 끝장에 등장합니다. “성모께서 예수님을 품에 안고 수도원을 찾으셨는데, 사제들은 길게 줄을 서서 경배를 드렸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시를, 어떤 이는 성화를, 어떤 이는 성인들의 이름을 외웠다. 줄 맨 끝에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곡마단에서 일하는 아버지로부터 여러 개의 공을 돌리는 재주를 배운 사제가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바치고 싶은 것이란 주머니에 있는 몇 개의 오렌지로 공중에 던지고 받는 놀이였다. 아기 예수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성모는 그 사제에게만 예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했다.” 볼품없는 사제는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그로써 하늘의 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권면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시오.”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현존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말씀을 끝까지 마음에 품고 새기고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도 아니고, 탄소 기후변화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악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불순종의 배후나 동기에는 인간의 탐욕이 꿈틀대고 있다 하겠습니다.
엊그제 저를 찾아오신 전 아산시장님은 평신도로써 제게 강하게 따져 물으셨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교파의 교리에 파묻혀 버리게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드시 가르쳐야 할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건강을 위한 하나님 말씀의 배려에 눈을 감고 있거나 침묵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생활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꼬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오직 머리되기만을 부추기는 것이며, 1등과 최고되기만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아직도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레 11장에는 인간에게 주신 것들이 충분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금하신 것들을 찾아내어 식욕을 채우는 것도 슬픈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마음 아픈 현실은 이런 얘기를 서로 나누도록 권장하고 배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잠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다시 중세 시대로 회기(回期)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호령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 생기를 되찾는 위대한 역사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하게 여기고 순종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