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깃털보다 가벼운 믿음에서 황금처럼 가치 있는 믿음으로. / 빌 3:1-16.

박성완 2021. 9. 24. 00:00

묵상자료 7435(2021. 9. 24. 금요일).

시편 시 32:1-4.

찬송 1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책이 대중적인 것이 되었지만, 한 때 책은 대단한 부자만 소유했던 재산이었고, 또 그 책의 내용 역시 아무나 볼 수 없어서, 책을 소유하고 본다는 게 일종의 특권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골 스톤의 시편]이라는 시집을 사진으로 봤는데요. 정말 대단한 책이었습니다. 이 시집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 전문 필기사와 화가 6명이 공동으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시를 적은 고딕체 라틴어 문자는 질서 정연한 모습이었고, 특히 첫 문장을 장식하는 대문자는 크게 쓰고, 그 안에 예쁜 무늬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각 페이지마다 테두리를 장식하는 나무, 또 풀이 그려져 있었고, 문장의 행이 끝까지 가지 않았고, 중간의 끝날 때에는 그 여백에 무늬나 새, 동물의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것만 전문으로 장식하는 화가가 있었는데요. 그 화가들은 그림에 쓸 색을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식물이나 돌을 직접 갈아서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드는 것인데, 특히 [골 스톤의 시편]에 삽화를 그린 감청색은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푸른 색 원석인 라피스 라줄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화가들은 진짜 금박 을 사용해서 양피지 표면에 붙이기도 하는 등, 이렇게 수작업을 거쳐서 만들어진 책은 한 가문의 가보가 돼서 후세에 계속 전해지게 되는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96일 방송> a.

 

2. “진정한 구원의 길(1-11)”목표를 향한 달음질(12-16)”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잔소리를 상대방은 매우 힘들어 합니다. 자신이 구속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야 그 잔소리를 싫도록 들었던 사람은 그 잔소리가 사랑의 얘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여 써 보냅니다.”는 구절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장 많이 잔소리를 들려주셨던 인물은 어머니였고 학교 선생님들이셨습니다. 어느 정치가는 자신 역시 어머니의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면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셨던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잔소리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귀한 사랑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했던 잔소리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개들을 조심하라는 것, 악한들을 조심하라는 것, 형식적인 종교인들을 조심하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들이란, 참된 복음을 듣고 순종하며 살려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비난하고 물어뜯는 사람들을 말하며, 악행 하는 자들이란 기독교 신앙과는 정반대의 선행을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할례와 같은 의식과 전통을 앞세우는 형식주의자들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종교는 인간 중심의 구원론을 표방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 자신의 마음 수행과 몸 수행에 의해서 도덕적인 삶의 결과로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입니다. 유교에서는 덕을 쌓는 일로, 불교에서는 선()과 공덕을 쌓는 일인데, 구체적으로는 이를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라고 부릅니다. 쉬운 말로 땅에서 하늘에 닿는 사다리가 있는데, 한 계단 한 계단 바른 삶을 살면서 올라가는 것이 구원의 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런 구원을 율법적 구원(6)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나서는 한낱 배설물에 불과한 것들이라고 말합니다(8). 쓰레기 혹은 배설물에 불과한 것들을 내세우며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곧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믿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은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임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비기독교인 들은 기독교인의 믿음을 깃털보다 더 가볍고 천박스럽다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 기독교인들의 얄팍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소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그런 믿음 말입니다. 그리고 믿는다고 말만 하면 구원에 이른다는 바로 그 깃털보다 가벼운 믿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가르치는 믿음은, 세상의 창조주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것, 장차 재림주로 오실 것,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그런 믿음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이 세상 그 어떤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고 자랑스럽고 목숨까지도 맡길 수 있는 이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