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시늉만 내는 종에서 진짜 종으로. / 고전 3:1-23.

박성완 2021. 9. 30. 00:00

묵상자료 7441(2021. 9. 30. 목요일).

시편 시 33:7-9.

찬송 37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런 가다모의 철학적 업적과 더불어서, 102세까지 살면서 왕성하게 활동한 그의 장수 비결을 궁금해 했습니다. 우선 그가 열린 마음으로 살아서 장수를 하지 않았나 싶은데, 철학자답게 [철학자 가다모, 현대 의학을 말하다] 라는 책에서, 자신의 건강 비결은 조화로움에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우리 몸의 조화를 깨트리지 않게,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은 되도록 멀리하고, 매일 40분 이상 자전거를 탔다고 하는데요. 이런 그의 건강 비결도 젊어서 병을 심하게 앓은 후에 생긴 버릇이라고 합니다. 가다모의 <지평 융합>은 그가 살았던 시기에 일어났던 전쟁이나, 유태인에게 가해졌던 일들이 나쁜 선입견을 버리지 못해서 생긴 것으로 봅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을 생각하듯, 인종차별, 남녀차별과 같은 나쁜 선입견들이, 그에게 조화로운 삶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98일 방송> b.

 

2. “하나님의 일꾼(1-23)”을 읽었습니다. 한번은 교단 총회 건물을 짓고 있는 현장에 여선교 회원들과 함께 위문 방문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삼겹살을 푸짐하게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식사기도를 드리는데 제가 실수를 한 것으로 오해한 공사 감독인 저의 교회 장로님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종들이라고 하셨는데, 기도에서 말씀하신 종이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으로 하셨으니까 오해마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충분히 오해하고도 남을 얘기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주인과 종이라는 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꾼이고, 또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기독교회 지도자들이 오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성경이나 기독교 신학에서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이 용어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이른바 표리부동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든 하나님의 종이든, 그 직분에 걸맞게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고, 일꾼이 아니라 상전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표리부동의 모습은 기독교인들의 삶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니 기독교적인 정신과 삶이 구현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암묵적으로 가르친 이들이 선교사들입니다. 제가 중국과 몽골 베트남의 선교사로 39주간을 찾았을 때, 현지 교회 지도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과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답게, 하나님의 종답게 처신하려고 나름 힘썼지만, 현대 교육방법이나 선교자금을 지녔다고, 만의 하나 주인행세를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매우 점잖은 표현인 일꾼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지만, 일꾼이라는 이 용어는 종 혹은 노예라는 용어의 다른 표현일 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격앙된 어조로 교회 안에 형성된 파벌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라는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 표현이냐는 것입니다. 한낱 종인 주제에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회는 한술 더 떠서 가장 낮은 신분인 종이라는 말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실제로는 임금처럼 군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가장 잘 답습한 집단이 정치가들입니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큰 절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자신들의 상전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듯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서 역설적인 제안을 합니다. 바보가 되라고 말입니다. 더 이상 사기행각을 멈추고 바보노릇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처세라고 말입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목요일엔 제자들의 발을 씻기긴 주님의 모습을 닮겠다고 비슷한 행사를 합니다. 무릎을 꿇고 큰 그릇에 교인들의 발을 담그게 하고 씻는 시늉을 합니다. 그것으로 종노릇은 끝이라 생각합니다. 바보 지도자들이 생겨나야 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