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억울한 일을 당하는게 낫다고. / 고전 6:1-11.
묵상자료 7447호(2021. 10. 6. 수요일).
시편 시 34:4-6.
찬송 4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옛적에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어떤 청년이요, 그 곳 소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동네 주민과 딸의 아버지가 그를 다시 중국으로 쫓아냅니다. 하지만 청년은 소녀에게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고, 소녀는 돌아올 때 청년의 고향에 있는 꽃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청년은 고향의 꽃씨를 가지고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정작 그 소녀는 온 집안이 이사를 가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중국 청년이 소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 마을에 꽃씨로 뿌렸는데, 그 자리에서 소담스러운 국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국화에 대한 전설인데요.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중국과 한국이 원산지라고 여겨지는 국화는, 백제 16대 왕인 진사왕 때, 다섯 가지 국화 씨를 일본에 보냈다고 합니다. 국화는 이렇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사람들 가까이서 피고 지던 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국화는 조선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서, 사군자의 하나로 그려졌지요. 그 고결하고 품위 있는 덕성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많은 문인들이 국화를 소재로 시를 지어 노래했고, 또 국화수와 국화차를 만들어서 즐기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간에서는 국화 꽃 잎을 말려서 베개 속에 넣고 자면 풍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고요, 신라에서는 국화를 신성하게 여겨서 역별을 몰고 오는 잡귀를 쫓아내는데 사용했다고 하네요. 유명한 고전이지요. [삼국지]에서 조조를 조롱하는 중국의 신선 팽조는 아침마다 국화 이슬을 마시고 수백 년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9월 11일 방송> a.
2. “교우끼리 송사하지 말라(1-11절)”을 읽었습니다. 오래 전 마을에 분쟁사건이 터졌습니다. 맹지(盲地)에 건축허가를 내준 시청의 조치가 화근이었습니다. 시청에서는 사업주가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주었던 모양입니다. 허가서를 내밀며 공사를 하겠다며 중장비 차량이 들이닥쳤습니다. 24가구가 사는 마을은 날벼락을 맞았다며 매일 밤마다 모여 끝없는 토론을 벌인 끝에 한 밤중에 건축하려는 맹지의 입구에 차량 몇 대를 주차하는 것으로 항의를 표했는데, 법원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각 가정마다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몇 분이 주민 대표로 위임을 받아 시장을 방문하고 항의를 한 것입니다. 주민 중에는 다혈질인 분들이 대표여서 시청이 요란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어떻게 중재되고 해결되는지를 잘 배웠습니다. 약 1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마을 주민들이 이겼고, 오히려 맹지를 출입하는 조건으로 주민들의 협상안이 받아들여지고, 마을 기금까지 생겼습니다. 다양한 주장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 일의 공로로 인정받아 제가 준비한 마을 규약과 재정 운용원칙 등이 쉽게 통과되고, 마을 촌장에 추대되는 악재까지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크리스천을 싫어하던 마을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고, 제게 가정과 부부 상담을 청하는 주민들이 늘어났습니다.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일, 참으로 못할 일입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먼지까지 다 털어내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미주알고주알 변호사에게 일러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세력을 과시하는 각가지 방법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출근시간을 골라 시청 정문에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여러 날 해야 했습니다. 팻말은 사업주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시장까지도 공격해야 일이 빨리 진행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변호사도 알게 모르게 일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들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것들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일들은 교회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대형 교회들 앞에서나, 요즘처럼 교단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얼마나 많은 피켓들이 동원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공개된 고발 내용들은 얼굴을 들기에도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주로 부도덕한 것들이 태반을 이룹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의 치부가 낱낱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런 모습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법정의 풍경을 잘 보았고 알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비서실장을 하셨던 잘 아는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무명의 변호사 시절이었을 때 학부형(부인의 성경반) 자격으로 여러 차례 점심을 대접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날 때마다 부탁하신 말씀은 “제발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내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 진흙탕에 내동댕이치는 꼴이라고 말입니다. 사도는 같은 느낌으로 지금도 부탁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그대로 당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라고.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