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그리스도 안에서 뒤 바뀌는 운명. / 고전 7:17-24.

박성완 2021. 10. 9. 00:00

묵상자료 7450(2021. 10. 9. 토요일).

시편 시 34:12-14.

찬송 2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고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듯이, 고요함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뒤돌아보게 하는 선생님과 같습니다. 하지만 혼자 고요히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주위에는 잠을 잘 때에도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그 앞에서 잠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을 잔 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가장 고요한 시간인데, 그 시간마저도 빼앗겨 버린다면 심각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혼자 있는 것도 일종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겠지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책읽기이고, 책읽기는 일종의 명상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내용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 세계에 금방 빠져들면서 소란한 마음에 고요함이 찾아들고, 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소리 내서 읽으면, 선한 사람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상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고요함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고요해 지면 누군가 곁에서 부채질을 해 주는 것 같아 더위도 잠시 물러나지요. 음악 감상도 그런 효과가 있지요. 홀로 하지만 외롭지 않은 것, 내 스타일에 맞는 것을 찾아서 실천해 봐야 하겠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84일 방송> b.

 

2.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17-24)”을 읽었습니다. 운명론(運命論)이란 모든 자연사나 인간사는 이미 정해진 운명이기 때문에 변경시킬 수 없다고 믿는 이론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령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 광대뼈가 튀어나오도록 얼굴이 생겼다는 것 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라며, 호연지기를 뽐낼 수는 있으나, 자신이 한국인으로 그리고 남자로 태어나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운명론은 받아들일 수 밖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굳이 한국인으로 살기 싫다든지 낮은 코를 그대로 둘 수는 없겠다 싶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완전히 세탁할 수는 없으니 2세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운명론이라고 얘기하는 것들 대부분은 얼마든지 보완해서 바람직한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깊은 뜻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수고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나 사회생활에서 체득하는 것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고 어울리는 삶을 살기 위한 영양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간혹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언급하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실례로 들었습니다. 하나는 할례를 받은 사람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입니다. 할례는 중동지방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종교적인 의식인데, 유대교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는 주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생후 8일째 되는 날 남아의 생식기의 표피를 자르는 의식인데, 이때 흘리는 피를 두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는 의식이었습니다. 일종의 피의 약속으로 현대의학에서는 포경수술로 정의, 종교적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전 2천년 아브라함 시대로부터 주후 1세기의 유대인 사회에 있어서는, 할례의 흔적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로 앞으로 교제를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은 골수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이런 할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오히려 할례를 받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실례는 사회적 신분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반상(班常)의 차별의 심각성이었습니다. 저의 국민학교 동창 중에는 백정(白丁)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른들이 백정의 아들하고는 놀지 말라는 말에, 그 친구는 중학교에 진학할 때 도시로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또 친구 중에는 산지기(산이나 뫼를 지키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아들이 있었는데, 그 호칭을 얼마나 듣기 힘들어했을까 싶습니다. 사도는 이런 경우를 부르심을 받았을 때 노예였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노예에서 주님의 자유인이 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자유인에서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라고 권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노예가 자유인이 되고, 자유인이 노예가 되는 엄청난 멋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 괘념치 말라고 말입니다.

 

3. 오늘 575돌 한글날에 옥스퍼드 사전에, 우리 말 한복, 반찬, 애교, 대박 등 26개의 순수 우리 말이 등재되었다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