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021. 10. 10. 성령강림절 후 스무째 주일]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말라. / 히 3:12-19.

박성완 2021. 10. 10. 00:00

묵상자료 7451.

시편 시 34:15-17.

찬송 36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산과 들에 가을이 깊게 배어들기 시작했었습니다. 벌써부터 깊은 산에는 붉고 노란 단풍이 들기 시작했지요. 잘 마른 낙엽들이 두텁게 융단을 깔아 줄 계절도 정말 머지않았습니다. 분주한 일상사를 문득 돌아보게 되고, 헝클어진 감정의 바닥을 바로 잡아야겠다. 이러한 생각이 들 때, 돌아보면 그 때가 바로 가을이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스산해 진다는 계절 가을 그루터기만 남은 논바닥처럼 마음이 스산하게 느껴질 땐, 내 안에 깊은 나를 만날 수 있는 조용히 가져야 할까 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07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스무째 주일로, 사도서간 히 3:12-19을 본문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들으라!(쉐마/6:4-9)의 신앙으로 일찍부터 가르쳐 왔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란,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반역하지 않는 일입니다(12-1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일 순종의 삶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란 그 분의 말과 인격을 존중하는 일이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새삼스럽게 인간의 사랑이란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그런 지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상대의 속을 뒤집고, 어깃장을 놓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히브리서 기자는 상당히 유대인의 신앙하는 태도에 정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는데 4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시련과 환란 앞에서 그 확신은 무너지기도 잘 했습니다. 므리바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시게 한 사건은 두고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했던 오점이 되었는데, 그래서 오늘 당장 말씀에 거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게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한 반역자들은 지극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16-17).

유대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구걸하는 분으로 생각한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그래서 일반 종교인들이 하듯 치성을 드리고 많은 예물을 준비하려고 힘을 씁니다. 좋은 것을 많이 드려야 그보다 더 좋은 것들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과 행동이었습니다(삼상 15:22). 그런데 순종이란 두 아들의 비유에서처럼 말로만 가겠습니다.”하고 실제로는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뉘우치고 가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종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유익이나 의지를 모두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슬프게도 하나님께 반역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18-19).

히틀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극명하게 구별해준 독일교회 목사입니다. 값싼 은혜가 오늘의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지만, 이를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값싼 은혜는 죄를 뉘우치지도 않고, 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죄를 덮어줄 값싼 덮개를 교회에서 얻으려 합니다. 죄인을 의롭게 하려고 십자가의 엄청난 대가를 치르신 주님의 값비싼 은혜를 비웃고, 오히려 죄를 의롭게 하는데 은혜가 알아서 해 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도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수고도 거부하고,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그 어떤 행동도 없이 누리려 하기 때문에, 이런 은혜는 가짜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란 자기 자신을 포기할 때,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