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부활 신앙의 부재(不在)가 가장 큰 문제. / 고전 15:30-34.

박성완 2021. 11. 1. 00:00

묵상자료 7473(2021. 11. 1. 월요일).

시편 시 37:21-24.

찬송 16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여름, 농부들의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결실을 이룬 들녘으로 날아든 참새들이, 사람과 허수아비의 눈치를 보면서 벼를 쪼아 먹습니다. 그럼 훠이! 훠이!” 새 쫓는 농부들의 소리가 들리면서 추수가 시작되지요. 들녘을 황금빛으로 비유하는 건 노란 색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벼들이 그간 농부들의 고생을 황금으로 보상해 주기 때문입니다. 한 때 이 들녘에서 거두어들인 나락 가마니를 소달구지에 싣고 정미소로 가던 농부의 발걸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풍경이지요. 지금은 농협의 정미공장으로 전화만 하면, 차가 와서 금세 나락을 실어갑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미소는 시골 어느 마을을 가던 흔하게 보이는 풍경이 엇지만, 이제는 거의 가동이 중단되었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산촌 마을의 정미소에서는 가을철이 되면, 먹 빛 함석 지붕위에 노오란 단풍잎이 떨어져서 쌓이곤 했지요.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정미소도 바빠집니다. 퉁 퉁 거리며 발동기 소리가 울리면서, 굴뚝에 희뿌연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정미소 안에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마당에서는 농부를 따라 온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노는 풍경. 그야말로 사진기로 잘 찍어 놓으면, 바로 작품이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923일 방송> a.

 

2. “우리의 부활 2(30-34)”을 읽었습니다. 부활신앙의 가치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이야말로 신앙의 마지막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초대 교회가 행하고 있는 죽은 자를 위한 세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죽은 자를 위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만, 그것의 정당성 여부는 차후에 따지더라도, 사도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영생의 부활에 이르게 하고 싶은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신앙적 동기(動機)를 말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운 것입니다. 요즘엔 이런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가 교회의 예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초대교회에서는 관행처럼 시행되었던 게 분명합니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가령 죽은 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거나, 죽은 자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해달라는 등의 기도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조심스럽게 대답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거나 그 반대이거나, 용서를 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망자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았던 남은 자의 처지에서는 그 망자를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기도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주저하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말입니다. 마치 망나니로 살고 있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법의 정신에는 정반대로 살고 있을지라도,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성경의 중심사상에는 어긋난 삶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는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른바 교회 전통이란 바른 것이든 원칙에 어긋난 것이든 후세에는 목적론적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 전통이든 그것이 성경의 조명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까닭은 성경의 가르침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죽음을 무릅쓰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활이라는 신앙적 목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과, 맹수와 싸워야 하는 많은 시련을 감내하는 이유도 부활신앙이 전제되는 때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들 신앙인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자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부단히 넘나드는 온갖 시련과 유혹을 이겨낼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룸메이트로 한 학기를 동거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형님이 고등학교 교사로 자신의 후견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하루도 신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매일 분주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을 학기에는 휴학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친구의 삶의 목표는 즐거운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 우연히 교정에서 만났는데, 군 제대를 하고 막 복학을 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철없던 시절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부활을 신앙하고, 영원한 부활의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몰려드는 시련과 유혹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신앙적 문제들은 부활신앙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오늘은 별세한 신자들을 기념하는 제성기념일(All saint’s day)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