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이름들. / 느 11:1-36.
묵상자료 7491호(2021. 11. 19. 금요일).
시편 시 40:4-5.
찬송 10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빵점 맞았어요.” 평일 오후 어느 한 카페에서의 일입니다. 손님이 서넛 밖에 되지 않아, 카페 안은 비교적 고요했습니다. 정적을 깨트리고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목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시험지로 보이는 종이를 손에 쥔 한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잠시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엄마를 찾아내고선 달려오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나 빵점 맞았어요.” 큰 소리로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100점이 아니라, 빵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도저히 웃지 않고 배길 수 없었습니다. 빵점 맞은 아이의 표정이 100점짜리였으니까요. 카페 안의 손님들은 모두 안 그런 척 하면서, 아이 엄마의 반응을 훔쳐봤습니다. 아기가 빵점 맞은 사실이 천하에 들통 났으니 얼마나 난처할까 싶었는데, 엄마의 반응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아유, 얘는 어떻게 빵점을 맞니? 그래도 나는 30점은 맞았는데.” 아이가 빵점을 맞은 건 영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눈치가 부족해서입니다. 황현상의 [밤이 선생이다]에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취학 아동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그 내용을 얼 만큼 이해했는지 알아내는 시험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과 모자를 쓴 사람, 낚시질을 하는 사람을 함께 그린 그림이었고, 문제는 이 그림에서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였습니다. 한글을 읽고 쓸 뿐 아니라, 간단한 셈도 곧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문제를 맞히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문제 앞에서 매우 난감한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되물었다고 해요. “내가 어떻게 모자 쓴 사람의 이름을 알겠어요?” 아이의 수준은 질문자의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낮은 점수였습니다. 저자인 황연산교수는 말합니다.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학교 교육의 코드를 알아차리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학생의 생각이나 의문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와 대답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방문 교사는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라고 물을게 아니라, 어느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나요? 라거나, 최소한 누가 모자를 쓰고 있나요? 라고 물었어야 한다. 코드의 바탕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잘못된 코드는 잘못된 그 만큼 더 강압적이다. 삶의 진실과 따로 도는 코드는, 결코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심해 본적이 있을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점수가 잘못된 코드에서 나왔고, 그래서 강압적이라는 사실을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년 11월 14일 방송>
2. “귀향민이 자리를 잡다(1-36절)”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일기를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그날 깨닫거나 강하게 느낀 어떤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내용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날 읽은 성경구절과 그 말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묵상자료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씨, 먹었던 삼시 세끼의 내용, 그 밖에 그날그날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모인 일기가 32권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기가 저와 제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꾸역꾸역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죽는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과 주변에 어떻게 무리지어 살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귀환자 10명 중 한 명만 예루살렘 성에 거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거하게 된 귀환자들은 특별한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유다 후손 468명과 베냐민 후손 928명이 있었고, 성전 일을 책임진 사제 일가는 822명과 242명, 성전을 지키는 수비대의 일가는 128명, 성가대 등의 일을 맡은 레위인 일가는 284명, 마지막으로 성전 수위 일가는 172명이었습니다. 나머지 9할은 시골지역에 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팩트체크(fact check)라는 말이 일상 어디에서나 관심을 갖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무관심한 역사 서술이 우리를 혼란에 빠트려 온 것을 반성한 때문일 것입니다. 팩트가 애매할 때 어떤 평가도 정당하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사실에 근거를 둔 평가만이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어떤 부류이며 그리고 그들이 마땅히 할 만한 일들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하는 것은, 유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출발선상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 일가의 수효를 밝히는 것 또한 그들이 짊어졌던 내용들의 진정성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 일기를 읽으신 분들에게서 어찌하여 묵상자료를 읽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적은 그 이름들은 저와의 각별한 존재들임을 기억하기 위해서 임을 밝힙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의 길에 그 이름들은 항상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 스스로 인정하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