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뒤엎은 대결 결과. / 암 7:10-17.
묵상자료 7509호(2021. 12. 7. 화요일).
시편 시 44:9-11.
찬송 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운동경기 같은 데서 결승전이 끝나면, 우승팀 선수들 대개 감독님께 우르르 몰려가서 헹가래를 치지요. 그런 헹가래 한번 받아보는 것도 참 특별한 기분일 거예요. 그런 헹가래에서는 공중으로 높이 붕 뛰어 올리는 것 못지않게, 내려올 때 단단하게 잘 받쳐주는 것도 참 중요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한 실리학자는 헹가래를 통해서 그 사람의 대인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가령 한번 상상해 보세요. 지금부터. 가족을 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나를 헹가래 친다, 그러면 누가 어느 쪽에서 서서 날 띄워주고 받쳐줄 듯 한지요. 물론 실제로 헹가래를 칠 때는 미리 생각하거나 정해 둔 게 아니라, 그냥 몰려가는 데로 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으로 상상으로 하는 거니까, 찬찬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날 헹가래 칠 때, 누가 내 머리 쪽에 설까? 오른팔 왼팔 혹은 오른 발 왼발 쪽에 누가 설 것 같은가? 말이지요. 사이토 이사무라는 일본의 심리학자에 따르면, 나를 헹가래칠 때, 내 머리 쪽에 설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은 무의식중에 내가 내 인생의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흔히 누구누구의 오른 팔이다 하면, 대개 그 사람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 중에서 가장 충실한 보조자나 조력자를 뜻하지요. 하지만 헹가래의 상상의 경우에는 오른 팔 쪽에 서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인정되는 사람이어서요. 그 사람에게 뭔가 조언을 구하거나 그 사람을 멘토로 삼으면 좋답니다. 그런가 하면 왼쪽 팔에 서는 사람이야말로, 마음 속 깊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라 하지요. 이 얘기는 달리 해석하자면, 헹가래 하나에도 머리를 받쳐주는 경쟁자, 오른 팔의 멘토, 왼팔의 진정한 친구 가장 신뢰하는 친구가 골고루 필요하다는 뜻일 텐데요. 그런 뜻에서 이번에는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 모두를, 한명 한명 마음속으로 헹가래쳐보면 어떨까요? 맨 마지막에는 물론 내가 나를 헹가래쳐주는 것으로 끝맺고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년 12월 18일 방송>
2. “아모스와 아마시아의 대결(10-17절)”을 읽었습니다. 아마시아는 여로보암 2세 재위 중의 베델의 제사장으로 성경에서는 이곳에서만 나오는 인물로, 아모스와는 동시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아모스는 제도권 밖의 농촌출신의 선지자인 반면에 아마시아는 제도권에서 당당한 세력을 누리던 제사장으로, 두 사람이 나란히 등장한다는 자체가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하루는 제사장 아마시야가 인편으로 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아모스라는 자가 들어와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나라를 망칠 소리만 하고 다닙니다. 왕은 칼에 맞아 죽고, 백성은 포로 신세가 되어 이 땅을 떠나리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아마시야는 아모스에게도 말을 합니다. “당장 유대 남왕국으로 가서 예언자 노릇을 하며 밥을 빌어먹어라. 다시는 하나님을 팔아 베델에서 입을 열지 말아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모스가 대답하기를 “나는 본래 예언자가 아니며 그 무리에 어울린 적도 없다. 나는 목자이며 돌 무화과를 가꾸는 농부인데, 야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제 그 말씀을 들어라.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몸을 팔고, 네 자녀들은 칼에 맞을 것이고, 네 농토는 타인이 측량하여 나눌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가 되어 고국을 등지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누군가가 듣고 있다면 황당하기 그지없거나, 어색하기 짝이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라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제사장과, 제대로 글자는 읽을 줄 아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시골뜨기 자칭 예언자와의 대화였을 것이니 말입니다. 예나 제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의전상 최소한의 격을 맞추어서 상대를 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을 무참히 깨트려버리고, 시골뜨기 예언자가 유명한 제사장을 압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그들 각자의 배후에 누가 후견인으로 서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세상이 부여한 학식과 권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사람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 하나님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TV나 유튜브로 설교를 많이 시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우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애써 전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설교자와, 사람들의 관심사인 성공과 출세에 열변을 토하는 설교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교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설교의 다른 말이기도 한 선포라는 말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는 제한된 의미가 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