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를 찾는 것 : 죄로부터의 해방. / 슥 3:1-10.
묵상자료 7517호(2021. 12. 15. 수요일).
시편 시 45:7-9.
찬송 2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읽은 자서전 중에서 누구의 자서전이 가장 감동적이었는지요? 자서전이라고 하면, 대개는 나이가 좀 지긋한 분들이 지나온 삶을 총 정리하는 것일 때가 많지요. 특히 본인이 직접 쓰는 거라서 체험내용들을 보다 생생하고 사실적이기 마련입니다. 물론 본인의 시각이나 입장이 더 두드러지니까, 중요한 일에서의 판단이 다소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나이든 분들의 고유한 책이다 시피한 자서전이 심리학에서의 기억 이론에 이르면 크게 달라집니다. 가령 심리학자인 잭 루빈은요, 기억력에 대한 실험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나이 들었을 때의 일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인 젊었을 때의 일을 잘 기억한다는 걸 알아냈지요. 그리고 또 다른 실험에서 그 이유를 찾아냅니다. 그러니까 기억에서 더 흐려졌을 수도 있는 젊었을 때의 일을, 시간적으로 더 가까운 나이 들어서의 기억보다 더 잘 떠오르는 이유, 그때가지 살아오면서 겪은 일중에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보다 중요한 일은, 대개 젊었을 때 겪거나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결혼이나 취직 출산 이런 자기 자신의 위신이나 역할 능력을 규정짓는 보다 결정적인 사건들이, 대개는 젊은 시절에 일어나기 마련이지 않아요. 반면 중년기나 노년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부분 안정적이거나 고정적 반복적인 사건들이지요. 요즘엔 또 그렇지도 않는 것 같네요. 퇴직의 충격 같은 게 더 심해진 요즘 같은 때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개 젊은 시절에 일어나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게 심리학자 루빈의 설명인 겁니다. 그러면서 루빈은 이런 기억의 특징에 자서전적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요. 그러니까 루빈의 설명대로라면, 그래요. 이담에 나이 들어서 자서전이라도 쓰려면, 자서전에 쓸 얘기가 보다 풍부하려면, 자서전적 기억의 특징을 생각해서 젊은 시절에 보다 많은 것을 겪고 도전하고 깨우치고 성장해 가야 하겠지요. 그런 것들이 보다 많이 기억에 축적돼 있어야 먼 훗날에 나름대로 보다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자서전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말이 예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자서전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젊은 시기의 추억과 기억을 많이 쌓아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12월 13일 방송>
2. “넷째 환상(1-10절)”을 읽었습니다. 이번 환상에는 등장인물이 네 종류인데,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그 동료들, 하나님의 천사 그리고 사탄입니다. 각기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사탄은 여호수아를 고발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천사는 그 사탄을 꾸짖는데, 아마도 여호수아가 때 묻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남루한 행색 때문에 그를 무시하고 정죄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여호수아를 변호하며 두둔하는데,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과 같은 처지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때 묻은 옷 대신에 좋은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깨끗한 관을 씌워주는데, 천사의 변호는 여호수아가 지은 죄 때문이라며, 그의 죄를 벗겨준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런 다음에 여호수아에게 주의 말씀을 일러줍니다. 야훼의 말씀을 따르고 맡겨진 직무를 바르게 수행한다면, 야훼의 세상에서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야훼의 종이 될 새싹을 돋아나게 하리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환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요한 계시록은 읽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있듯 말입니다. 오래 전 인사동에서 조각전을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들어가 감상을 하였는데, 마침 작가와 동석해서 작품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갤러리들에게 작품 평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 미술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분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니까 귀기우려 듣던 작가는 잘 보셨습니다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갤러리가 자신의 느낌을 얘기하며 작가에게 묻자 이번에도 작가는 잘 보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작품평과는 상반된 내용이어서 다른 갤러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작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림이나 조각 심지어 시나 소설을 대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가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작가의 의도와 목적이 있었지만, 그것을 대하는 제3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의도나 목적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와 작품이 느끼는 사람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듯, 성경의 환상도 역시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의해서 새롭게 이해되고 해석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불속에서 꺼내 온통 그을리고 멍들은 그런 볼썽사나운 존재를 새 옷을 입히고 새 관을 씌워주셔 죄를 벗겨주신 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온전한 눈을 뜨게 하심이라고 말입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참된 축복은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순진하고 맑은 마음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