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메시야 예수의 길을 안내하는 세례자 요한 출생이야기. / 눅 1:1-25.

박성완 2021. 12. 20. 00:00

묵상자료 7522(2021. 12. 20. 월요일).

시편 시 46:8-11.

찬송 5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며 연말연시 무렵이면, 음식에 관해서도 과식을 하거나 무리하기 쉽습니다. 특히 음식의 양은 물론, 그동안 음식에 대해 지켜오던 원칙들, 가령 채식주의 자라던지 인스턴트 음식 절대 안 먹기 주의 같은, 자신만의 소신이나 원칙을 깨기가 쉽지요. 환경운동가이며 음식칼럼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 분투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현대인의 식사며 요리 재료들이 만들어지거나 키워지는 과정에서, 때로 얼마나 심각하게 오염되는지, 따라서 얼마나 많은 음식들을 가능한 안 먹으면 안 먹을수록 좋은지를,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반면 그런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쓰는 일부 유기농 농가들의 특별한 노력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뒤 쪽에는 잡식동물의 해결책, 식사를 위한 몇 가지 조언이라는 글도 실려 있는데요. “슈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 매장에 가득 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음식에 가까운 식용물질을 최대한 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조할머니가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음식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성분이 다섯 가지나 넘거나 발음하기에 너무 힘든 성분이 포함된 음식이며, 액상 과당이 들어간 음식도 가능한 먹지 않아야 한다. 썩지 않는 요리 재료는 사지도 말고 먹지도 않는다. 뷔페 식당 같은 데서는 샐러드 바나 과일코너를 집중적으로 이용한다. 스스로 음식 탐정이 되어보라.” 이런 조언들이 실려 있습니다. 몰라서 실천 못했던 조언들은 아니지요. 들어서 알고 있는 데도 지키지 못하는, 지키기 힘든 내용들입니다. 각별한 의지와 실천력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사실 음식과 식사 요리는 사람의 육체만이 아니라, 심리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심리 용어 중에 샤덴 프로이데 라는 독일어가 있는데요. 한마디로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고소해 하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아주 심술궂은 심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해 하고 즐거워할 때 며는, 맛있는 음식을 즐길 때와 뇌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하네요. 사람의 본성에는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 같은 심술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지요. 반대로 또 다른 심리 연구팀에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대할 때의 사람의 뇌 역시 허기로 뭔가를 먹고 싶어할 때에 하는 뇌의 반응과 똑 같다고 합니다. 남도 나도 공평하고 이타적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사람에게는 음식의 욕구만큼 본능적인 것이지요. 한 개인의 삶이나 가치관은 당장에 입에 맛있는 음식과 건강에 좋지 않는 좋은 음식 중 어느 쪽에 더 큰 비중한 강한 의지를 발휘하느냐 하는 것처럼, 심술과 이타심 두 가지 본능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크게 좌우되고 충실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1222일 방송>

 

2. “저자로부터 데오필로에게(1-4)”세례자 요한 출생의 예고(5-25)”을 읽었습니다.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기록된 데살로니가 전서를 비롯, 바울의 서신들이 기록된 다음에 공관복음서가 기록되었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한 때 양식사 비판에 큰 기대를 걸었던 일부 학자들은, 초대교회는 물론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서, “바울에서 예수로!”라는 슬로건을 높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공동체인 초대교회가 바울의 영향을 받아서 공관복음서나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서가 기록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바울에서 예수로!”라는 구호가 성립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관복음서는 충분히 저작 동기와 목적이 기획되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서는 예수 공동체를 바르게 이해시킬 교과서의 성격을, 마가복음서는 위기에 처한 초대 공동체의 소명이 복음의 성격을, 그리고 누가문서(누가복음서와 행전)는 초대교회를 변증할 목적에서 내력을 밝히는 성격을 분명히 합니다. 데오빌로라는 인물은 당시 초대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고위직으로 추론 됩니다.

   두 번째 단락은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입니다. 우선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예수 탄생의 예고(26-38)”에 바로 앞서 취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 공동체 혹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오해와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다윗대왕을 계승할 대단한 인물이어야 했는데, 예수라는 인물은 십자가에 처형당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스러운 인물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는 요원의 불길처럼 유대 전체 사회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 메시아 운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 세례자 요한의 출현은 메시아 예수를 설명하는 엄청난 대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단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대적인 회개운동과 세례자 요한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꾼증언은 유대인의 시선을 예수에게로 옮기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출생의 비밀이 필요했을 것이며, 이를 밝히려는 노력이 누가문서 기자의 큰 과제였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알리고,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을 평평케 하는 회개운동에 최적화된 내력이 되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