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막니피카트(Magnificat) :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위한 노래. / 눅 1:46-56.

박성완 2021. 12. 22. 00:00

묵상자료 7524(2021. 12. 22. 수요일).

시편 시 47:5-7.

찬송 10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1989년과 2003년 사이, 미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산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인생의 어떤 부분은 바꾸고 싶은 가요.” 이런 설문조사요. 그리곤 1위에서 10위까지 답을 추려냈지요. 과연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가장 후회하는 것 1위는 무엇이었을까요? 5위부터 거꾸로 보면, 5위 자기 개발에 소홀했던 것, 4위 아이들 양육문제, 3위나 2위는 사랑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후회 또 직업에 관한 후회였어요. 그리고 1위는 바로 학업에 관한 것이었지요. 학교 다닐 때, 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거나 쉽게 학교나 공부를 포기했던 것이, 미국 성인 남녀들의 가장 큰 후회로 남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공부나 학업 이런 것들에 크게 집작하지 않고 아쉬움도 별로 크게 않았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런데도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1위라니까, 역시 공부라는 건 동서고금에 상관없이, 제 때 할 만큼 해야 후회가 없는 걸까요? 사실 진작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이런 후회는, 누구보다 오늘 우리 주위 수험생들만큼 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생각은 후회나 아쉬움이 아니라, 나에게는 지금까지가 최선이었다는 생각, 그에 따라 시험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하고 차분하게 시험을 치른다는 마음과 다짐이겠지요. 수험생도 지켜보는 가족도 담담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셨으면 바래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1111일 방송>

 

2. “마리아의 노래(46-56)”을 읽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로 불리는 오늘의 본문은 기독교 세계에서 오랜 시간동안 애창되고 있는 찬양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끝기도(終課, Compline)에 부르도록 하고 있고, 루터교회에서는 저녁기도(晩課, Vespers)에서 부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6세기 베네딕투스가 저녁기도회의 중심부분에 넣어 그레고리안 성가 형식으로 부르게 했고, 그밖에 바흐를 비롯하여 몬테베르디, 모차르트, 러시아 정교의 멜로디를 차용한 라흐마니노프 등 여러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을 받고 있는 마리아의 노래는 그 내용의 범상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노랫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너무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라는 여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생각들이란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적인 거대한 장벽에 억눌려 살고 있었던 가난하고 병들고 차별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폭발 일보 직전의 문제들의 해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마리아의 노랫말은 구세주 하나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며, 자신의 비천한 삶을 돌보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은총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러면서 가슴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한을 뿜어냅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쫓으시고, 부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신 후, 그 자리에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높이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셨다고 노래합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전율을 느끼게 하는 구절구절들입니다. 교만한 자들을 뿔뿔이 흩어버리고, 세력가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시고, 부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그 어떤 종교가나 도덕군자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천지개벽이라도 난 것 같은 혁명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타는 마음이 예수님의 육친 마리아라는 가녀린 처녀의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니 말입니다. 저는 이 마리아의 노래 한 구절만으로 마리아의 위인 됨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충분히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온갖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벌써 2천 년 전에 기운차게 외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은 모든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세상을 열기 위해서 마구간에 그리고 갈릴리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