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보인다. / 요 2:1-11.
묵상자료 7531호(2021. 12. 29. 수요일).
시편 시 49:1-4.
찬송 44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회사마다 월급 주는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오늘 날자, 매달 25일에 주는 회사가 대부분일 듯 한데요. 한번은 독일 본 대학의 연구팀이 실험을 했어요. 점이 찍힌 컴퓨터 화면을 계속 보여주면서, 거기에 찍힌 개수가 개수보다 첫 화면에 찍힌 점의 개수보다 많은지 적은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실험이지요. 그리고는 그 판단이 맞을 경우에는 일정한 보수를 지급했습니다. 실험 결과, 순간적인 판단을 잘해서 보수가 조금씩 더 높아지면, 저마다 기분이 더 좋아지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도 당연히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보수가 계속 오르는데도 그런 기분과 의욕이 꺾이거나 낮아질 때가 있었어요. 그건 바로 다른 참가자가 나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였지요. 그 사실을 안 순간, 만족스러운 웃음이 순식간에 불만스런 찌푸림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비교나 경쟁심이 자기의 만족도를 꺾거나 해친 거지요. 그래서 연봉제를 도입한 회사들에서는, 직원들 사이에 연봉 액수를 비밀로 하는 거겠지요. 사실 다른 사람과 똑 같이 일했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보수를 받으면, 정말 기운도 마음도 상할 겁니다. 경쟁 심리나 비교심리가 무조건 나쁜 것만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뿌듯하고 여유 있을 수 있는 마음을 비교의 마음으로, 불만스럽게 힘들게 하지 않는 것도 현명한 마음 경영이 아닐까요? 아무튼 행복한 월급날 되세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년 11월 25일 방송>
2. “가난의 혼인잔치(1-11절)”을 읽었습니다. 나라마다 지방마다 크게 다른 것이 관혼상제에 관한 풍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풍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낭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겨울 학기 미국의 한 신학교에서 한 학기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토요일에 학교 채플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흥미를 가진 제가 결혼식을 구경하려고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초청장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교 학생으로 결혼식에 관심이 있어서 구경하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자신의 결혼식에는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해서 거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피로연의 경비는 초대한 혼주가 다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시 혼주가 초청한 사람들만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으니까, 몇 사람이 참석할지를 미리 알고서 피로연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피로연에서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동이 났다는 것은 계산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보통은 7일 길면 2주간 동안 계속되기 때문에 음식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강원도 철원에서 제자 한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다 하서 주례로 참석했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이 열리는 신랑 집으로 갔는데, 그곳 풍습은 3일 동안 동네잔치를 연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포도주가 떨어져 낭패가 난 상황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이 결혼식에 초대되어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친 마리아가 그 집 과방(果房)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었는데, 포도주가 동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께 와서 그 얘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느냐면서,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모친 사이에는 메시아 의식에 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말이거나, 적어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위인 됨을 알아보고 계셨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례를 위해 준비된 항아리 6개에 물을 붓게 하셨고,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첫 번째 기적 이야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어찌하여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을 아시면서도 기적 사건에 참여하신 것일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눈감지 못하시는 주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강조하신 “네 이웃이 누구냐?”는 물음에 응답하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웃의 필요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신만 바라볼 뿐이지만, 누가 내 이웃인가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목마르고 배고프고 마음 상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