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신학은 성경해석의 좋은 도구. / 요이 1-13.

박성완 2021. 12. 30. 00:00

묵상자료 7532(2021. 12. 30. 목요일).

시편 시 49:5-8.

찬송 9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자인 닐 루스는 [이프(IF)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사랑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후회하는 것들, 몇 가지를 조사해서 밝혔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보면 이런 식이예요. 22살의 남자, “내 성격을 스스로 좀 더 잘 통제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그녀도 더 행복했을 거고, 우리 관계도 훨씬 더 좋았을 텐데.” 26살의 여자, “그가 날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농담이라고 생각해서 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 말을 다시 듣기 훨씬 쉬웠을 텐데.” 46살의 여자, “내가 사회생활과 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했다면, 내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그의 기대가 그렇게 높아지지 않았을 텐데.” 53살의 남성, “만약 우리 부부가 인생의 목표와 장기적인 계획들 대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요즘 비슷한 후회에 빠져 있으신지요? 그런데 최근 어느 글에선가 결혼이 아니라 후회를 가리켜서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되는 것이라고 쓴 것을 봤어요. 해도 좋지만 안 해도 좋은 게 또한 후회라는 것이겠지요. 지나간 11월 한 달을 후회로 차갑게 몰아세우기 보다는, 다 그럴만 했다, 그만하면 잘했다. 그런 격려의 따뜻함으로 11월을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1130일 방송>

 

2. “인사(1-3)”, “속이는 자와 그리스도의 적(4-11)” 그리고 작별 인사(12-13)”을 읽었습니다. 요한 일서가 익명의 발신자인데 반해, 요한 이, 삼서는 발신자가 장로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 2세기 초대교회는 편지 형식의 문서들이 유포되고 있었는데, 교통은 물론 각 지역마다 통치자들이 굳게 성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형편에서는 인적 교류가 어려웠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편지들이 가장 효과적인 복음 전파나 교육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요한 이서는 장로 요한이 발신자로, 수신자는 귀부인과 그의 자녀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제목을 속이는 자와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이 제목 역시 초대교회의 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요즘도 이런 사회 현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만, 평온하던 호수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지면 그 파문이 온 호수에게 퍼져나가듯, 그리스도교 신앙이 유행처럼 소아시아 지방에 불고 있을 때,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이비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영적으로 갈급해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 상황을 암시한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한 이서의 수신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나타난 사이비 종교인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을 부정하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강하게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성경의 말씀을 믿기도 설득하기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주제는 지금도 여전히 매우 힘든 변증할 기독교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초대교회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매우 난해한 주제였던 것입니다. 이른바 예수는 누구이신가? 지금은 매 주일 사도신경 혹은 사도 신조라는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지만, 이 문제는 <기독론>이라는 신학적인 이론이 정립하기 까지는 극심한 혼란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런 초대교회의 배경을 반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신학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마리아라는 실존 인물의 몸을 빌려 탄생하신 한 인간이라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신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정립하지 못한다면, 신과 인간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늘 혼란을 일으킬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 모순을 극복하는 신학이 중재함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가지시고, 동시에 완전히 사람의 성품과 한계를 가지신 분으로 설명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람으로 고난당하시고 사람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이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