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한 해를. / 요 6:16-21.

박성완 2022. 1. 3. 00:00

묵상자료 7536(2022. 1. 3. 월요일).

시편 시 49:18-20.

찬송 2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음식점에서 요리나 반찬을 함께 나누어 먹다보면, 나중에 꼭 한 두 개나 한 젓가락이 남지요. 저절로 남은 듯 일부러 남겨 놓은 듯, 꼭 한 두 개나 한 젓가락씩 남곤 합니다. 그렇게 남은 하나는 또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는데요. 최근에 한 영화 잡지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에 어떤 분이 물어보셨어요. 왜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음식엔 누구도 선뜻 젓가락을 가져가지 못할까요? 신경 정신과의 하재응 교수가 답을 얘기했는데요. 그건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욕심을 들어내고 싶어서라고 해요. 반찬이나 요리가 넉넉할 때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자주 갖다 먹는지, 서로 별로 시선이 안 가지요. 하지만 딱 하나 남았을 때, 누군가가 집어가면, 자연 모두의 시선이 몰립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관심에 많이 예민하지요. 그래서 앞서의 경우도, 남은 하나를 가져가면 사람들이 너 그게 굉장히 좋아하는구나자신의 취향을 단정 짓거나, “너 좀 음식 욕심이 있구나자신을 욕심 있는 사람으로 본다고 생각하지요.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러게 볼 거라고 걱정을 하는 거지요. 그래서 아무도 남은 하나는 먹으려 하지 않는 거라고요. 결국 체면 때문에 음식점의 요리나 반찬 접시에는 항상 마지막 하나가 남는 셈인데요. 새해부터는 그런 낭비가 되는 체면은 버려도 좋지 않을까요. 하긴 요즘은 체면 때문이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 음식이 남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18일 방송>

 

2. “물 위를 걸으시다(16-21)”을 읽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저녁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화로운 시간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루가 고된 노동을 한 농부에게나, 빚 독촉에 이리저리 돈을 마련하려고 여러 사람을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욱 더 고단한 하루였기에 평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둠이 깃들었음에도 여전히 마음은 무겁고 침울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만사 다 잊고 잠을 청할 수 있고, 깊은 잠에 빠져들 수만 있다면 분명 평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만사 다 잊고서 깊은 잠에 빠져든 제자들이었습니다(공관복음서 마 14:22-27, 6:45-52는 밤 사경이라고 소개). 4경이면 우리 시간으로 새벽 1-3시경이니까 깊어도 한참 깊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깊고 어두운 시간에 거센 바람과 사나운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더욱 더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그곳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경험했던 문제들 중의 문제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꺼번에 심각한 문제가 몰아터진다는 사실입니다. 거센 바람과 사나운 물결로도 감당하기 벅찬데, 주님까지도 부재중이라니 말입니다. 우리들 삶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불행이란 벌떼 같이 달려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물위를 걸어서 시련의 한 복판에 있는 제자들의 배를 향해서 오고 계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는 두 가지 현장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오셨다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워할 것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위를 걷는 일이란 불가능을 헤치고 가능케 하시는 행동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 찬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제 제가 설교하는 농인교회에는 중국에서 왔다는 한 젊은이가 참석했습니다. 그 분은 비장애인임에도 중국 수화를 배웠고 훗날 북한에 복음을 전할 꿈을 갖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분인데, 한국의 수화가 달라서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했습니다. 불가능을 뚫어보려는 작은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장애인에게 비장애인이 다가서는 일이 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들 삶에서는 불가능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거기다 철의 장막인 북한에 복음을 들고 찾아가려는 그 마음도 불가능을 흔들어 깨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번째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두려움이란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연약한 마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도전을 두려워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의 멸시와 비웃음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마음은 수 백 수 천 가지나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연약한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려워 말라.”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승리의 면류관을 쓰신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금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시고,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마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