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포기라는 순종만이 믿음이다. / 요 3:14-21.
묵상자료 7551호(2022. 1. 18. 화요일).
시편 시 52:4-5.
찬송 34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성공하고 싶은가? 나아가 언제 어디서든 승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거심(去甚), 거사(去奢), 거태(去泰)’ 이 세 마디 말씀만 명심하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심하게 지나치지 마라(去甚). 사치하지 마라(去奢). 오만해서 게으리지 마라(去泰). 노자의 말씀이다. 노자의 이 세 마디 마디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포박(抱樸)이다. 껴안을 포(抱), 자연스럽고 수수한 박(樸). 겸허하고 검소하게 살라는 것이 포박이다. 이렇게 살면 실패할 리 없다. 망신살이 뻗쳐 흉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노자가 밝혀 준 생활의 비법을 무시한 탓에 모진 상처를 입고 앓는다. 그 비법이라는 것이 거심이요, 거사요, 거태라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 것이지 사람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 근본을 일러 인의(仁義), 도덕(道德), 또는 심법(心法)이라 한다. 따지고 보면 한결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서로 어울려 사랑하며 자유롭게 사는 인간이 되라는 것. 이러한 근본은 세상이 아무리 첨단과학으로 변한다 해도 무시되거나 부정될 수 없는 숨결이다.
숨을 편안히 쉬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심하게 굴지 말고, 사치하지 말고, 게으르지 마라. 숨기고 감추고 꾸며서 무엇하겠는가? 겸허하고 소박하게 살면 항상 승리한다.” 윤재근, <내 마음속 조용히 살아리랏다>, p. 39.
2. “니고데모와의 대화 2(14-21절)”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옛 고사(古史)를 인용하셨습니다(14절).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일삼는 백성에게 내린 불뱀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구리뱀을 장대에 높이 달았던 사건 말입니다. 참 희한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죽어 마땅한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해방의 감격을 주신 은총을 너무도 시시한 불만으로 배신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 살길을 구했고, 구리뱀을 장대에 높이 달아놓아 누구든지 뱀에 물리면 살게 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성경 구절을 좋아합니다. 민 21:9의 말씀인데, 이것은 인간구원의 예표(豫表)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이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습니까? 구리뱀에서 뿜어지는 무슨 광선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흉악범이든지 간에 두말없이 살아날 것이라는 그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은 쉬워 보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삼상 15:22). 성경이 본받으라고 가르치는 위인들은 한결같이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네 인생을 망친 망나니들의 역사를 보면 한결같이 불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순종은 단순히 예나 그리하겠습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담이 그랬고, 두 아들 비유 중 큰 아들이 그랬습니다. 저는 순종을 자기 포기라고 해석하고 가르쳤습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인 때문입니다. 제 아들이 천안의 한 대학에서 전임으로 가르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내의 부탁으로 식탁 다리를 고치려고 보니 3치짜리 못이 몇 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방을 열고 말했습니다. “세치 못 2천원 어치를 사오너라.”고 말입니다. 아들은 시각 디자인을 가르쳤기 때문에 대형 컴퓨터와 소형 컴퓨터 등으로 강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를 쳐다보고 컴퓨터를 쳐다 보기를 두 세 번 하더니, “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일어났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순종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할 수 없는 위대한 행동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앞설 위인은 없습니다. 100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억장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집어졌을 것입니다. 아내에게조차 그리고 당사자인 이삭에게도 말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이 엄청난 명령앞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위해 자신의 모든 상념과 두려움을 떨쳐버렸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