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그리스도 예수가 커지기 위해, 자신을 작아지도록 힘쓰자. / 요 3:22-30.

박성완 2022. 1. 19. 00:00

묵상자료 7552(2022. 1. 19. 수요일).

시편 시 52:6-7.

찬송 4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질그릇을 두고 내기 활쏘기를 하면 활쏘는 솜씨가 좋다. 하지만 띠쇠를 걸고 활을 쏘면 조금 주저하게 되고, 황금을 걸고 활쏘기를 하면 혼란해지고 만다. 활을 쏘는 재주는 마찬가지일 것인데, 물질을 아끼는 마음이 끼어드는 까닭에 활 쏘는 재주가 달라진다.’ <장자>의 지락편(至樂篇)에서 한 뱃사공이 안연(顏淵)에게 해 준 말이다.

   안연은 공자의 수제자이다. 그 안연이 노를 잘 젓는 뱃사공을 보고, 노 젓는 재주를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게다. 그 말에 뱃사공은 재주라는 것을 중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으로 위와 같이 말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장자가 지어낸 것이라고 보아도 된다. 장자는 왜 이런 우화를 지었을까? 알량한 재주를 빙자해 아는 척하지 말라 함일러라.

   하던 짓도 멍석 깔아 놓으면 못한다. 바깥 형편에 따라 잘잘못이 결정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없음이다. 외물(外物)에 따라 영향을 받는 사람은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혼란해진다. 그래서 자신하던 짖도 서툴러지고 만다. 지식을 믿고 벌이는 재주라는 것이 그러하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자신을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은 자신을 알아보는 데 장애가 되기 쉽다. 눈 뜬 봉사는 누구인가? 지식만 믿고 자신을 몰라보는 인간이다.”

윤재근, <내 마음속 조용히 살아리랏다>, p. 162.

 

2.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증언(22-30)”을 읽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속에 솟구쳐 오르는 감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요즘 저는 석선(石仙) 박명호 선생에 대해서 이런저런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돌나라 오아시스 농장>을 일구어 유기농 먹거리 생산으로 인류를 구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세계 10여 개국에 돌나라 영농단체를 설립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고 있는 분이어서 그렇습니다. 선생의 꿈은 . 가난이 없는 새 세상. . 병이 없는 새 세상. . 싸움이 없는 새 세상. . 불행이 없는 행복한 새 세상. . 범죄 없는 새 세상. . 꿈이 이루어지는 새 세상. . 죽음이 없는 새 세상. 이라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전도관 계통인가 했고, 다음에는 신천지인가 했습니다. 아직은 확실한 정체를 모르겠지만, 활동 규모로 보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증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한 자리에서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것도(觀照)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리는 광야의 소리꾼으로 자처했었는데, 이제 자신의 생이 다하는 순간에 어떤 말을 하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을지 라고 말입니다. 본문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 사이에 정결예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신흥종교라고 할 수 있는 요한을 따르는 무리들과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 대해서 설왕설래하는 얘기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과연 이 무리들이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차이점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정결예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논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정결례의 목적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따지고 싶은 점들이 많았습니다. 본질보다는 비본질이 우선시되고, 목적보다는 방법이 강조될 때는 언제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그 제자들이 요한을 찾아가서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예수님이 세례를 베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세례에 관한 한 세례자 요한의 활동이 압도적으로 유명하다고 생각해 왔던 때문에, 약간의 질투심을 느낄만한 얘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놀라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그 분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보좌역으로써 충실하고자 했음을 밝히고 있는 일화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세례자 요한의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주님 앞에서 잊지 말아야 할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