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현존인 말씀을 믿는 신앙이 중요. / 요 4:43-54.
묵상자료 7557호(2022. 1. 24. 월요일).
시편 시 54:4-5.
찬송 4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최근에 지갑 잃어서 애를 먹은 적 없으신지요. 요즘 기갑 안에 든 현금도 현금이지만 여러 가지 카드나 신분증을 신고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이 정말 번거롭고 불편하지요. 그래서 때론 돈은 가져가도 좋으니 나머지 것들은 그냥 지갑 채 돌려주었으면 바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에 의하면, 잃어버린 지갑을 좀 더 잘 돌아오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괴짜 심리학]의 저자 리처드 와일스 먼에 따르면, 여러 개의 지갑 안에 현금 카드는 똑 같이 집어넣고, 그 외의 것들은 지갑마다 좀 다르게 넣어서 지갑을 일부러 분실했지요. 그리곤 지갑 회수율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어린 아기 사진이 든 지갑의 회수율이 가장 높았다고 해요. 특히 밝게 귀엽게 웃고 있는 아기의 사진이 든 지갑의 회수율요. 어린 아기들을 보면 무심결에 호감을 느끼고 보호하고 싶다, 이런 의지가 생기는 인간안의 원시 본능 때문이라고, 와일스 먼은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역시 인간에게는 웃음, 특히 아기의 웃음이 최고라는 얘기지고 하지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지갑에 백일 돌 사진을 넣고 다니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글쎄요. 지갑 분실 시 회수율에 대비해서라도, 미혼인 분들이라면 지갑에 방긋 웃고 있는 조카 사진이라도 하나 넣고 다녀야 할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1월 21일 방송>
2.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예수님(43-54절)”을 읽었습니다. 아픈 것은 자랑을 해도 무방하지만, 건강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자랑과 교만은 사촌지간이어서 오히려 건강을 과신하거나 남용하다가 오히려 헤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갈릴리는 수도 예수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농어촌 지역이어서 문화적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높은 관리의 처지에서는 매우 화가 날 일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다시 갈릴리의 가나로 돌아오신 주님께 가버나움에 사는 한 유대인 관리가 찾아와 병든 자식을 고쳐달라는 청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경험하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본인이 병들어 고생하는 것보다는 자식이 병들어 힘들어 하는 것을 보기란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그래서 백방으로 고쳐보려고 의원을 찾아다니고 좋다고 하는 처방은 다 해 보려고 합니다. 이 관리의 아들은 중풍이나 장티푸스로 여러 날 중병을 앓고 있었다고 했습니다(52절에 힌트). 그는 예수님께 죽게 된 아들을 가버나움에 내려가서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비슷한 일화들이 공관복음서에 소개되는데, 백부장이 그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청한 일화(마 7:24-8:13, 눅 6:47-7:10)와 회당장 야이로가 그의 딸을 살려달라고 청한 일화(마 9:18-26, 막 5:21-43, 눅 8:40-56)가 그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환자가 아들인데 반해, 다른 두 일화는 하인과 딸이라 하니 분명히 다른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그만큼 우리 주님께서 다양한 사람들을 고쳐주셨음을 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시며 믿음 없는 세태를 나무라십니다. 둘째는 “집으로 돌아가라.” 네 이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행히 그 관리는 믿고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그 관리가 돌아가는 노중에 아들이 살아났다고 전하러 온 종들을 만나 그 아들의 열기가 떨어진 시간을 확인합니다. 주님이 네 아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인 오후 1시였음을 확인합니다. 넷째는 이 사건으로 고급 관리의 집안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치유 기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말씀은 예수님이 치유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도관의 박태선은 자신이 안수한 생수를 마시거나 바르면 병을 고친다 했고, 퇴계로 충현교회의 현신애 권사는 밀가루 떡을 붙여주며 “믿는 대로 될지어다.”고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라. 네 아들이 살아났다.”는 말씀으로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신 것은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가지신 모든 능력이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현존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