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광풍 속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님. / 요 6:16-21.

박성완 2022. 1. 29. 00:00

묵상자료 7562(2022. 1. 29. 토요일).

시편 시 55:12-14.

찬송 43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실제 사람관계에서 빚어지는 우연이나 갈등, 때로는 통속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비현실적이고 지극히 작위적인 설정 그 이상일 때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심리학계에서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과 심리학자인 디디에 앙제외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요. 디디에 앙제외의 어머니는 앙제외를 낳기 전부터 우울증에 피해망상이 심했지요. 특히 앙제외를 낳고 나서는 유명 여배우가 자신을 해치려한다는 망상 끝에 마침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그녀를 담당했던 정신과 전문의가 바로 그 유명했던 자크 라캉이었지요. 그런데 라캉은 그 무렵 유명세로 인한 초조감 때문이었는지, 앙제외의 어머니를 치료하는 일 보다는, 그녀의 증세로부터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것을 실험하고 밝혀내는데 더 골몰했습니다. 그 결과 앙제외의 어머니는 증세가 더 심해진 채 치료를 마치게 되지요. 어린 앙제외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훗날 우연히 정신 분석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부의 마지막 과정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수련의 과정을 지도받는 분석 수련생 과정을 하필이면 라캉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리곤 이상하게도 라캉의 분석에 자꾸만 거부감을 느끼게 되지요. 고통스럽게 4년간의 수련의 생활을 마치게 되는데, 그 후에야 비로소 어머니가 라캉의 환자였다는 사실, 결과적으로 병이 더 깊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러니 그 후 앙제외가 반 라캉운동에 나선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렇게 때로는 윗대의 잘못이 우연이라는 장치에 의해서까지 아랫대로 이어지는, 통속 드라마의 작위적인 설정을 흉볼게 아니라, 누군가와 크게 원수지거나 잘못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는 게 최고이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224일 방송>

 

2. “물 위를 걸으시다(16-21)”을 읽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일을 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점이 약이 될 때보다는 해가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들 인간의 삶에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보다는, 그와는 정 반대의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할 뿐 아니라, 더 흔하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 한 지인이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던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상대방이 호호 하하하며 모르는 것 보다는 아는 게 더 낫겠다 싶었는데, 그의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언행에서 신뢰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신뢰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뿐이 아니라 행복 감사 기쁨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들입니다. 여기다 미래나 내세에 관한 신앙적인 차원으로 발전하면 우리들 이성으로써는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분량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 본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난센스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19961월 미네소타 주의 쌍둥이 도시 세인트폴에 잠간 공부하러 갔었는데, 어느 주일에 성경반에 참석했습니다. 교사로 있는 분이 심심할 테니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간 길이었습니다. 마침 이 본문이 그 날의 주제로 올라왔는데, 그때 학생 중 한 명이 화학박사라고 하는 분인데, 중량과 비중 어쩌고 하더니, 물 위를 걸어갈 수 있는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다시 들어 올릴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설명이 가능한 것, 이해될 수 있는 것, 다음에 똑같이 시연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인생에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이해가 전무하며, 재연이 어려운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저마다의 인생사에는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심방대원을 태우고 신호등이 바뀌는 찰나에 좌회전을 하고 있었는데, 반대 차선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찰나에 직진하는 아주 빠른 차량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났는지 모릅니다. 천만 다행으로 제 차의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모두 무사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저는 대형 트럭에 의해 여러 차례 추돌하는 위기를 넘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물결이 사나워 파선할 지도 모르는 위기를 당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신 일화입니다.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제자들의 경험은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위기 속을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 인생을 찾아오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위로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광풍이든 순풍이든, 아니면 토네이도가 쉼 없이 몰아치든,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보다 더 시급하고 효력이 있고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이 어디에 있을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