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어떤 목마름으로 혀가 타고 있습니까? / 요 7:37-52.

박성완 2022. 2. 7. 00:00

묵상자료 7571(2022. 2. 7. 월요일).

시편 시 56:12-13.

찬송 16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휴대전화 요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요? 요금이 내려간다, 안 내려간다 하는 얘기에서부터, 핸드폰을 받는 쪽에도 요금을 내게 하는 수신 요금제가 검토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 중 수신 요금제 얘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나는 이가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던 사람인데, 어찌하다 보니 공부는 중단하고 일을 하게 되었지요. 일은 여러 곳의 저학년 아이들을 아침저녁으로 차에 태워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데려오고 갈 때, 한 아이라도 제 시간에 나와 있지 않으면, 뒤로 연달아 도착 시간이 늦어지게 되지요. 그러면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친다고 합니다. 다 자신이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전화들이지요. 하지만 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거의 매일 발생했다고 해요. 아무리 시간을 엄수해 달라고 해도, 한두 명은 반드시 늦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전화 받는 요금으로 나가는 돈이, 수입에 비해 만만치가 않다고 합니다. 그러니 받는 쪽은 요금을 내지 않는 우리 식의 요금을 부럽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인 사람도 있었지요. 평소에 긴 수다전화나 잡담 전화 받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친구는, 수신 요금제가 생기면 거는 쪽에서도 미안해, 한결 조심하게 될 테니 싫은 전화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래서 이 제도가 생겼다면 좋겠다는 쪽입니다. 어떤 제도나 규칙도 자신의 입장이나 취향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이게 되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 요금제가 좋든 싫든 그 때문에 문득, 말의 값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해 보게 됩니다. 전화비란 전화라는 기계나 전선, 기지국을 쓰는 비용이라기보다, 말을 하거나 들어 주는 것에 지불하는 말 값이 아닐까? 말의 값, 높기도 하고 형편없이 낮기도 할 말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해 봅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8122일 방송>

 

2. “목마른 사람은 내게로 오라(37-39)”, “그리스도에 관한 구구한 생각(40-44)” 그리고 유다 지도자들의 논란(45-5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지난 5일 대한신경학회는 우리나라 성인 10명중 4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병율이 1위라고 합니다. 지난 4일에는 한 유망 배구선수가 27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며칠 전에는 2019년 미스 USA인 체슬러 크리스트(30)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면과 식욕부진 등으로 인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가 쉽다고 합니다. 이런 우울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슬픈 일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의 한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열심히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곁으로 보기에는 두 아드님을 훌륭하게 키우신 분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 모든 인간을 목마른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며, 그 일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녀를 양육에 혼신을 쏟다가 그들이 떠나가 버린 빈 둥지에서 허무를 느낄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력감을 자신에게서 느낄 수도 있으며, 주변의 무관심을 견딜 수 없는 망상에 사로잡힐 때 생길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누구나 가능한 일들이지만, 분명한 것은 육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영적으로건 목마른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초청장을 보내셨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고 말입니다. “나를 의지하는(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흔히들 경험하는 어떤 행사나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나,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며 최선의 노력을 쏟는 소원 성취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아무개 둘째 아드님 000군 사법고시 합격같은 축하 현수막에서 찾을 수 있듯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청장은 인생의 고비마다 필요를 절감하는,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일시적인 갈망이나 희망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초청장을 받게 된 사람은 그가 누구든(초청자이신 주님이든 주님을 의지하는 믿는 사람이든), 더 이상 밖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언급한 성경의 말씀대로라고 한 말씀은, 스가랴 8:14이나 시 8:16 등으로 근거를 제시하곤 하지만, 오히려 성경의 전체적인 의미 곧 맥락적 이해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끝없는 세속적인 목마름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더 이상 허무를 실감하는 사슬에서 자유한 참된 해방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