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필요한 모든 인간들. / 요 7:53-8:11.
묵상자료 7572호(2022. 2. 8. 화요일).
시편 시 57:1-3.
찬송 41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꼭 한 분야의 공부를 해당학교나 기관에서 전문적으로 체계적으로 한 사람만이 전문가인 것만은 아니지요. 그런 정식의 과정 없이도, 혼자만의 깊은 공부를 통해 전문가와 같은 수준의 전문가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답답하고 우울한 시간들을 거치면서, 정신분석이나 상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지요. 그래서 그 분야의 책을 쉼 없이 읽었고, 전문가들로부터 꽤 오랫동안 직접 정신 분석과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를 전문가 못지않게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됐지요. 더 나아가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전문가 못지않은 진단과 조언과 충고를 해 주게도 됐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그 진단과 충고에 귀를 기우리던 주위 사람들은, 차츰 고개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못지않은 그가, 갈수록 이전의 그 보다 훨씬 거칠고 오만하고 무례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인은 그게 내면의 상처를 들어내서 치료하는, 그게 자아 존중감을 되찾는 길이라고, 배우고 믿어서 철저하게 확신하는 듯 했지요. 하지만 그 확신에 바탕이 되는 지식은 맞을지 몰라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사람들만 보면 지시하듯 지적하고, 못마땅해 하면서 가르치고, 명령하듯 고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를 보면서, 다들 예전의 심약했던 그를 그리워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지요. 전문가라고 쉽게 자처하는 사람, 설익은 전문가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요.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더 없이 가치 있는 덕목 중 하나인 겸손함이 있으니 말입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8년 1월 24일 방송>
2. “간음한 여자(7:53-8:11)”을 읽었습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진보와 변화를 겪어서 딴 세상처럼 여겨지는 느낌”이라고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 절의(節義)를 지킨 학자 세 명중 하나인 야은 길재의 시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1392년 고려가 멸망하자 수도인 송도(개성)을 둘러보던 길재는 산천은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은 없고 태평성대를 누렸던 고려 시대가 꿈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읊었다 합니다. 유대인 율법에는 간음한 간부와 음부를 돌로 쳐서 죽이는 끔찍한 조항이 있었습니다(레 20:10-26, 신 22:22-24). 지금도 아랍 세계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 법을 시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무서운 형벌이 지켜지고 있다면 소위 <Me Too !>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 중 많은 일화중 매우 극적인 장면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찾으셨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가르치게 되셨는데, 그런 자리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이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바리세파 사람 중 한 명이 주님께 묻습니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 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말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법대로 하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고심하셨다고 했습니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시더니 재촉하는 소리에 고개를 드시고는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치시오.” 그리고는 다시 땅 바닥에 뭔가를 쓰시기 시작하셨고,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 된 바리세파 사람들은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났고, 주변은 섬찟하다가 따뜻한 온기가 돌았으며, 주님은 그 여인에게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없느냐?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으니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일화는 간음죄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킬 뿐 아니라, 과연 인류가 간음죄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오게 합니다. 모세의 법이 제정된 후 2천년이 지난 어느 날, 주님은 이른바 산상수훈이라는 여러 날의 집회에서 하신 설교에서 십계명을 해설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약하면 간음이란 남자와 여자가 교접하는 일만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음욕(淫慾)을 품기만 해도 간음을 한 것이라는 풀이를 하신 것입니다. 미국의 십대녀들의 방에는 한국의 아이돌 BTS의 사진이 흔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냅니다. 누군가를 연모(戀慕)하는 것은 드라마의 단골 메뉴일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간음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며, 구원받을 존재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거룩한 삶을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죄악이 더 빨리 스며들지 모르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