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불뱀 사건은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 / 요 8:21-30.

박성완 2022. 2. 10. 00:00

묵상자료 7574(2022. 2. 10. 목요일).

시편 시 57:7-9.

찬송 4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름에는 우산을, 겨울에는 장갑이나 머플러 같은 것을, 거의 습관적으로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때론 비가와도 또 추워도, 일부러 갖고 다니지 않는 때도 많았지요. 또 한편으론 자기 것을 자신이 잃어버리는 거고, 비교적 사소한 것들이니 괜찮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해 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야, 내걸 잃어버리는 일도 다른 사람에겐 폐가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잘 아는 사람이 주선한 저녁 모임 때문이었습니다. 네 사람 중 제일 연장자인 그 분은, 잘 아는 멋진 곳에서 너무나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지요. 식사만 훌륭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주고받은 이야기들도 너무나 즐거우면서 배울게 많았습니다. 더없이 유쾌하고 뿌듯하고 보람 있는 저녁 자리였지요. 더욱이 그 분은 차로 모두를 다 집 앞까지 바래다주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추운 날이어서 집에 돌아갈 일 만큼은 좀 아득했는데,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챙겨주신 거였습니다. 그래서 따뜻하고 행복하게 집에 돌아왔지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머플러가 또 없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차에 두고 내린 듯 했습니다. 그 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지요. 머플러가 차에 있어도 그걸 전해 받느라고 바쁜 분을 수선스럽게 만들게 죄송스러웠고, 차에 없으면 그 분 성격에 어떻게든 찾거나 기어이 하나를 새로 사 주실 듯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확인을 안 하자니 잃어버려놓고는 확인도 안 해서 그분이 먼저 전화를 하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듯 했지요.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무얼 잃어버리는 것도 나만 잃어버리고 그만인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이구나.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부터는 물건 간수를 좀 잘 해야 하겠구나. 분실이라는 것에 대한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8128일 방송>

 

2. “내가 바로 그리스도이다(21-30)”을 읽었습니다.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말은 빈말일 때가 많습니다. 제대로 알기는커녕 영 거꾸로 알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햇수로 오래 지켜보았다고 해서도 아니고, 이런 저런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면서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그런 뉘앙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 주변에는 가깝게는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나, 3년을 지근거리에서 따르던 무리들이 적잖았습니다. 그런가하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생각되지만, 실상은 주님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따져보는 사람들 이른바 유대종교의 지도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보통 이상으로 주님을 알고 있었다 생각됩니다. 그런데 주님께 우호적인 사람들이든 적대적인 사람들이든,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보새요 씨알을 호로 가진 함석헌 선생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란 시로 우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자신을 알아줄 그 사람은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 때는 저도 그 사람을 가져보려고 힘을 써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그 사람이 되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간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자살을 하려나?”하고 웅성거렸습니다. 주님은 명쾌하게 일러주셨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아래에서 온 사람이 위에서 온 분을 어찌 알아볼 수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위와 아래를 태생으로 생각하는 말은 계급이나 신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존재와 근원의 차이를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헛발질을 하는 가장 흔해빠진 문제가 바로 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존재와 근원을 무시해 버리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사람들 세계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한 젊은이가 자신을 낳아 걸러준 부모를 무시하기로 한다고 선언합니다. 한 성인이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을 무시하겠노라고 선언을 합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근원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하물며 피조물이 자신의 조물주를 시시비비하는 불경을 저지르는 현실 앞에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무지해서라면 한 번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듭 되풀이 되면 호로자식으로 내팽개쳐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채듯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주님의 대답은 민 21:9을 일러주십니다. 오래 전 설교에서도 밝히신바 있었습니다(3:14).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사는 유일무이한 길은, “쳐다 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 이외에는 달리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진리를 깨우칠 순간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