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 요 10:31-42.
묵상자료 7582호(2022. 2. 18. 금요일).
시편 시 59:6-8.
찬송 41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 선생님께> 소개해 주신 장애를 가진 친구 분이 쓰셨다는 시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한편 한편의 시들을 읽는데, 눈가며 콧등이 조금 매콤해 지는 것을 느꼈지요. 뭔가를 읽고 보고 들으면서 눈물이 날만큼 감동을 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개인적인 반응이기 쉽지요. 읽고 보고 들은 그 무엇이 그 사람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일어나는 반응. 김 선생님의 친구 분의 시는 몇 번의 수술 끝에 장애를 가지게 된 제 아이와 또 그 아이가 쓴 시들과도 겹쳐지더군요. 제 아이덕분에 전 장애를 가진 많은 이들이 왜 시인이고 화가인지를 잘 알게 됐지요. 몸이 자유롭지 않은 대신에, 그들은 정신을 영혼을 더 맑고 자유롭게 풀어준 덕분에, 몸이 자유로운 이들보다 더 편하게 시와 그림과 음악에 가까워지는 것 같더군요. 저는 그런 이들이 쓴 시와 그림이, 들꽃 하고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화원에서 파는 한 눈에 우리를 사로잡는 현란한 꽃과는 다르게, 들꽃은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도 굽히고 한참을 쳐다봐야만, 비로소 아름답다고 느낄 수가 있지요. 시간을 내서 지켜본 사람에게만, 작은 꽃 속에 담긴 맑은 우주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몸이 불편한 제 아이도 가끔 한밤중에 사각사각 무슨 글인가를 적어 나가곤 하지요. 한 때 전 그것들을 잘 모아서 언젠간 화원속의 꽃처럼 조명을 받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욕심마저 버리고 그냥 지켜보기만 합니다. 그런 제 욕심이 그 아이의 자유로운 영혼 산책의 즐거움을 깨트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장애를 가진 이들과 친구가 되고, 그분들의 일을 돕고 계시는 모습,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보여요. 선생님 친구 분들은 어쩐지 덜 외로울 것 같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년 2월 27일 방송> a.
2.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2(31-42절)”을 읽었습니다. 일본에 이지메 문화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왕따 문화가 있습니다. 집단 따돌림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철부지 어린이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하지만, 성인 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런 따돌림 문화나 현상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는 지성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현실입니다.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파벌 싸움이 조직적이고 맹목적으로 자행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는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우리 법조계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법과 원칙에 따르는 것과 조직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부지 아이도 아니고, 미숙한 학생도 아닌데 마치 조폭의 일원처럼 일사 분란하게 행동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풍조는 숨길 수 없는 대 원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미래가 보장된 순탄한 길이냐, 아니면 배신자로 낙인찍힌 가시밭길이냐 하는 줄서기 문화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종교계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불법이 분명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유불리를 계산한 후 유리한 쪽에 줄서기를 하는 서글픈 모습들이 되풀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이런 집단 따돌림 현상의 한 복판에 서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로 쳐서 죽이는 즉결재판을 시도했는지 모릅니다.
집단 따돌림의 당사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주류가 아니라 변방에 있는 소수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제가 가끔 장애인의 아픔을 얘기하곤 하는데, 우리 같은 비장애인들이 무심코 내 뱉는 말 한마디나 표정 하나가, 그분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겪는다고 말입니다. 출근길에 흰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맹인을 향해, 오늘 재수 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합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이런 부탁을 자주 합니다. “우리를 특별하게 대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보통 사람처럼 대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이 한갓 사람이면서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13절). 불경죄 혹은 신성모독죄를 연상케 하며, 모든 인간으로부터 격리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으로 읽힙니다. 또한 주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하는 주장임도 확인합니다(16절). 그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모두 신이라고 부른 성경말씀을 소환합니다(시 82:6).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니 불경죄도 신성모독죄도 어불성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답은 주님을 믿지 않는 점이라 하시면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이상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주님을 믿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