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을 가르치는 말씀. / 요 11:38-44.
묵상자료 7586호(2022. 2. 22. 화요일).
시편 시 60:1-4.
찬송 15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언니에게> 언니의 편지 잘 받았어. 시침 뚝 떼고 편지라고만 하더니, 편지와 함께 제법 쏠쏠한 액수의 격려금이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어. 정말 고마워. 많은 것을 생략하거나 아예 건너뛰면서 아끼고 아꼈는데도, 역시 인류지 대사라서인지 슬슬 돈이 새는 느낌이라 초조했는데, 언니 덕분에 숨통이 조금 트였어. 언니 말대로 염소 몇 마리 소 몇 마리를 바치는 형식의 결혼 지참금은, 좀 더 세련되고 교묘한 형식으로나마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딱히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일생에 한번 뿐인데, 라는 마법 주문에 잘못 걸리면, 결혼식 자체가 미로처럼 얽혀버리기도 쉽고 말이야. 우리는 처음부터 일생에 한번이라는 주문에 빠지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비교적 알뜰살뜰 잘 진행시켜나가고 있는 것 같아. 사실 따지면 일생에 한번 뿐인 것이 어디 결혼식뿐이겠어.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일도 일생에 한번 뿐인 일.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언니에게 긴 편지를 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생에 한번 뿐인 일이잖아. 그래서 살금살금 욕심이 생기려고 하면, 매 순간 순간이 일생에 한번 뿐인 순간이다, 이렇게 물을 타면서 알뜰하게 진행시켜 나가고 있어. 그러고 보니 언니와 헤어지는 것도 처음이지. 언니가 있어서 사춘기 때나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확실한 도움을 받곤 했는데, 결혼은 내가 먼저네. 결혼 준비며 결혼 생활에 대해 언니에게 조언해줄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 나도 평생 한번 잔소리해 가면서 언니 좀 가르쳐 보고 싶거든.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년 3월 13일 방송> b.
2. “다시 살아난 라자로(38-44절)”을 읽었습니다. 오래 전에 저의 중학교 시절 생물 선생님과의 일화를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의 선생님은 기독교의 진리가 참된 것임을 말해 달라고 하셨을 때,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사람을 살린 일화들을 장황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그런 일은 인류 역사에서는 흔하게 일어났다 하시면서 그걸로는 부족하다 하셨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는 기적 이야기는 찾아보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 중에는 신화에 해당되는 것들도 많을 것입니다만. 실제로 성서학자들은 창세기 11장까지를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신화에 가까운 말씀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나 초고령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활동하신 일화들을 신화로 설명할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나, 말씀 한 마디로 불치병 환자를 고치신 일,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님은 하나님으로써 그런 일들을 넉넉하게 하실 수 있다고 설명하거나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신성(神性)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주님은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시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 저는 라자로의 부활은 일시적인 부활에 불과했을 뿐, 그는 또 다시 죽었을 것이고 여전히 무덤에 묻혀 있다는 사실 앞에서, 어찌하여 최후의 부활까지 그대로 두지 않으셨을까 하는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활의 경험한 라자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가능성 혹은 잠재력을 신뢰하도록 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 신앙에 이르도록 훈련시키는 의미가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 광야 40년은 우리들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열악한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60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훈련의 시간으로 주셨다고 말입니다. 죽음에서 부활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라자로의 부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사건과 그리고 종국에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부활을 믿는 부활신앙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주인이시며 동시에 부활의 주인이심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부활 신앙으로 살아갈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