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너희는 내가 주께 이끈 하나님 나라의 열매. / 고전 9:1-15.

박성완 2022. 3. 24. 00:00

묵상자료 7616(2022. 3. 24. 목요일).

시편 시 68:9-11.

찬송 2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닐곱 살 무렵 할아버지가 문 닫고 나가라.’ 하셨다. 어리둥절해 하며 할아버지 문 닫고 어떻게 나가요?’ 여쭈니 당신도 당황하셨다. 그때 나는 문 닫고 나가는 방법이 따로 있는 줄 기대했다 적잖이 실망했다. 15년 후 닫힌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바로 T-1000이었다. (: T-1,000은 영화 터미네이터 2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열 한두 살 땐가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시다 쌀 팔아오는 걸 잊어버렸네.’ 하셨다. 인제 쌀까지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기울었나 싶어 싱숭생숭한데, 내게 시키셨다. ‘얼른 슈퍼에 가서 쌀 한 되 팔아 와라.’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어떻게 쌀을 팔아 와?’ 어머니가 야단치셨다. ‘지금 네가 아니면 누가 하냐? 다 커서 이 심부름을 왜 못 해?’

승객 여러분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안전선을 침범해 들어간/ 사람도 없는데/ (중략) / 어두운 지하철역에서 / 나의 발은 확고하게 안전선 밖에 / 서 있으며 / (중략) / 이윽고 전동차가 들어오면 / 나의 발은 안전선을 뛰어넘어 / 훌쩍 객실 의자로 삼켜지네.

   문을 닫고 나가지 않을 수는 있어도, 문을 닫고 나갈 순 없다. 나가고 문 닫으라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중략) 이 표현을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지금도 어머니는 다른 건 다 사시면서 쌀만큼은 파신다. 해마다 가을이면 쌀 팔았어? 안 팔았으면 내가 팔았으니까 노느자이런 표현을 처음 접한 며느리가 어머니 쌀을 사야지, 왜 판다고 하세요?’ 라고 물었다. 기차나 지하철 역 승강장 안내방송인 안전선 밖으로를 두고 말이 많았다. 열차 기준에서 안전선 밖이지, 승객 기준에서는 안전선 안이다. 열차가 강자, 승객이 약자가 되는 고정관념을 심어준다.”

유선영, <어른의 어휘력>, pp.169-174.

 

2. “사도의 권리와 의무(1-15)”을 읽었습니다.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호감과 비호감으로 열띤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사도 바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한국의 신학자(?)는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신학적 주장이 너무 강하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이런 유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 목사를 목격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루터를 믿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일견 정곡을 찌르는 듯한 일침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의 행적이 담긴 사복음서보다는 바울의 서신들이 더 먼저 쓰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사복음서가 바울 서신에 직 간접으로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만일 바울을 무시한다면 신약 성경은 물론이고 기독교회가 제대로 서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꾼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인물이 실제로 그의 생애에는 매우 험난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밖에서 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자유인이 아니라는 말도, 사도도 아니라는 말도,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는 말도, 성도들에게서 분에 넘치게 재물을 긁어모은다는 말도 들었던 것입니다. 시쳇말로 가짜 정보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사자에게는 심각하다 못해 황당해서 혼란에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른바 처세술의 대가에게서 한 수 배우기 위해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는 항간에 떠도는 문제를 빼놓지 않고 열거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사도가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했단 말입니까? 바로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여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하고 문제들이 무엇인지 1절에서 확인하듯 밝힙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주목할 단계입니다. 이 모든 문제들 하나하나 시비하듯 취급하지 않고, 단 하나의 대답으로 일괄한다는 것입니다. 개역 개정판은 주 안에서 내가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자신의 사도직을 변증하는 가장 뚜렷한 증거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제 방식으로 의역을 하면, “내가 사도로 일한 그 움직일 수 없는 열매가 바로 너희들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허물이 많건 적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있는 한, 너희는 바로 내가 주 안에서 맺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확신 때문에 뒤에 나오는 사도직의 권리나 보상에 대해서, 사도는 아무 미련도 없이 다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