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매일의 숙제를 충실하게 하는 생활. / 고전 9:16-27.
묵상자료 7617호(2022. 3. 25. 금요일).
시편 시 68:12-15.
찬송 41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 중에는 <파랑새> 라는 노래가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 가사는 이 고장의 혁명가였던 전봉준을 두고 한 노래라 함은 누구나가 아는 일이다. 이성보다도 감정이 우월하다고 인정하였던 과학적 신비주의자 메어델링크는 일찍이 <파랑새>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갈급하게 구하는 행복은 결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 밭에 있음을 깨우쳐 주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지는 거의 반세기에 가깝기 때문에 나의 기억이 확실한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의 주인공인 치루치루, 로치루의 두 형제는 파랑새가 잇는 곳에 행복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새를 잡기 위하여 동서남북을 헤매었으나 잡으려던 파랑새는 도저히 잡을 수 없음을 깨달음ㅁ과 동시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같이 사는 자기 가정이 가장 행복한 고장임을 깨닫게 되어 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간혹 이 치루치루 로치루와 같은 철없이 아이들이 아니라 철이 들고 나이 든 분들까지가 그들이 사모하는 행복을 찾기 위하여 자기 집을 떠나서 정처 없는 유랑객이 되어 이곳저곳을 헤매이는 이들도 있고, 사회 문제를 사회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연구한다는 지성인들까지 허무맹랑한 선전에 속아, 제 집안을 버리고 유리방황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지동식, <돌 세 개>, pp.22-23.
2. “사도의 권리와 의무 2(16-27절)”을 읽었습니다. 같이 석양 길을 걷고 있는 동료에게 요즘 어찌 지내냐 물으니, 한 숨 자고 깨면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해서, 그럼 무얼 하느냐 다시 물으니, 세상 걱정하며 새벽을 맞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람은 하루 5만 가지 생각을 한다 합니다. 그런데 저녁 일기를 쓰려고 펜을 들면 생각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쓸 데 있는 생각은 얼마나 하고 살까요? 손가락 열 개를 다 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풍문에 일희일비 하거나, 맨날 하는 시시한 걱정과 근심을 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한 때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괴롭혔던 문제들도,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다 새까맣게 잊혀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쓸모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삶이 쓸모 있는 삶인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숙제하기>로 정했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숙제는 끝냈나?” 물어보고는 화들짝 정신이 들어 다시 책을 꺼내고 숙제를 마쳤던 기억들이 나곤 했습니다. 지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일의 숙제는 있습니다. 세끼 밥을 맛있게 먹는 일에서, 연로한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일, 텃밭에 물주는 일 등등 어느 하루도 숙제가 없는 날은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것이 행복을 채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제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는가?” 그런데 이런 선한 삶에는 언제나 유혹이 스며든다는 사실입니다. “틀림없이 뭔가 소득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힘써 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겪게 되는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목회자들은 현역 시절이나 은퇴 후에도 기세가 등등합니다. 충분히 급여와 퇴직금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보너스로 받는 것들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광야 40년 동안 잘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돌보심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본받고자 힘을 썼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사도는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셨고, 항상 긍휼하심으로 동행하여 주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