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상숭배는 진화 발전한다. / 고전 10:1-13.

박성완 2022. 3. 26. 00:00

묵상자료 7618(2022. 3. 26. 토요일).

시편 시 68:16-18.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함지박처럼 크고 탐스러운 꽃들을 두루 지칭하는 말로 목련과 산 목련, 모란과 작약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모두 꽃송이가 넉넉하지요. 특히 모란과 작약은 농염하고 화려한 여인에 비유될 정도로 꽃 중의 꽃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색과 모양이 비슷해도 모란은 나무, 작약은 풀입니다. 작약은 모란 다음에 피어서 5월 말, 6월 초에 볼 수 있지요. 언젠가 안동 하회마을에 갔다가 집 주인이 안마당에 핀 작약을 지금까지 살면서 본 꽃 중에 제일 예쁜 꽃이라며 황홀한 눈빛으로 소개해 준 기억이 납니다. 신라사 선덕여왕과 함께 등장하는 꽃이 모란이라면, 작약은 고려사에서 제국공주의 이야기와 함께 등장합니다. 제국공주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로 고려 25대 왕인 충렬왕의 왕비였지요. 제국공주가 어느 날 산책 중에 작약이 탐스럽게 핀 것을 보고 한참을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요. 모란과 작약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공주 이야기에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정식으로 함박꽃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도 있습니다. 바로 산 목련입니다. 흰 빛깔이 정갈하고 곱고, 꽃망울을 터트리면 노란색의 암술과 보라색의 수술이 어우러져서 꽃이 예쁘게 피는데, 남한에서는 함박꽃나무로, 북한에서는 목란으로 불립니다. 목란은 북한의 국화로 김일성 주석이 1964년에 개명한 것이지요. 비록 북한의 국화이긴 하지만, 함경북도를 제외한 한반도 모든 지역에서 두루 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자생수종입니다. 목련, 모란, 작약, 함박꽃나무 ...... 함박꽃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 가까운 곳에서 줄달아 핍니다. 이처럼 넉넉하고 환하고 향기로운 함박꽃들이 우리 얼굴에도 많이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선경, <문득 묻다 1>, pp.28-30.

 

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1-13)”을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광야 생활 40년은 많은 사건들과 시련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척박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오는 시련은 항상 절망의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목마름은 가장 심각한 문제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천만 다행인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셔서 굶주리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매일 똑 같은 음식재료이다 보니 40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버티기에는 애급에서의 고깃국 생각을 간절하게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낮의 뜨거운 사막의 열기와 저녁의 차가운 사막의 냉기를 피할 수 있도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배려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주 꺼내어 입에 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40년이란 길고 긴 세월을 광야에서 살면서 유다 백성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는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음행을 일삼다가 하루에 23,000명이 죽었고, 셋째는 주님을 떠보다가(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고, 넷째는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다가 천사의 칼에 맞아 죽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이라는 그리고 해방된 나라로 입성하는 원대한 꿈을 가졌던 백성들이,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상시국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느 조직신학자는 십계명 1계명이 신앙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다면, 신앙하는 모든 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대표적인 범죄가 소위 금송아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준비되었던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자기 민족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신앙지침을 전수받는 과정에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형 아론을 불신했고, 자신들을 위하여 황금 송아지 상을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아론은 이에 동의하고 백성들에게서 백성들의 귀에서 금고리를, 손에서 금반지 등을 바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상을 만드는 일에 아론과 백성들의 행동은 아주 민첩하였습니다(32:1-6). 이런 황금 신상은 그들이 애급에 있을 때 많이 보아왔던 이방 신상의 하나였습니다. 우상숭배에서 하나님 섬김으로는 40년이나 되는 훈련이 필요했지만, 하나님에서 우상으로의 회기는 수 시간으로 충분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상은 우리들 삶의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반해, 하나님은 언제나 저 하늘 너머 구름 저편에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잘 아는 한 목사님은 전도 왕을 뽑겠다면 대형 냉장고를 상품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횟수에 관계없이 교회에 출석하도록 독려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번만 참석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빙자한 하나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으니,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아무리 떠들어도 이미 혼합주의에 깊이 빠진 후였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